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 날 수 계산
- 인간 존엄성 상실
-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
- 사무엘기상
- 마가복음
- 묵상
- LightandDelight
- 성경읽기
- HappyHoliness
- Light&Delight
- 왕이없다
- 에임스반석교회
- 터닝포인트
- 이진영목사
- 내인생의터닝포인트 #에임스 #이진영 #AmesJin
- 단지파
- 미가의집
- 말씀묵상
- 큐티
- 교회
- 기브아사건
- 사사기17장
- 삼손
- 입다의서원
- 사사기
- 진영이논리 #해피홀리니스 #이진영
- 하이브리드3.0교회
- 떠나보내는 것
- 부목사
- 레위사람과 그의 첩
- Today
- Total
목록분류 전체보기 (390)
Happy Holiness
Light & Delight 9월 29일 목회서신 더 깊은 찬양을 위해 이전 교회에서 사역할 때의 이야기입니다. 교회에서 아직 믿음에 대한 확신이 없는 분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였습니다. 그중 한 자매에게 교회에 다니면서 불편한 점이 없냐고 물었더니, 그 자매는 “찬송을 할 때마다 ‘사랑한다’, ‘경배한다’는 등의 가사가 무척 불편해요. 도대체 그분이 나에게 무엇을 해 주었기에 그런 가사를 불러야 하나요?”라고 대답했었습니다. 지금까지도 교회 생활을 하면서 그런 질문을 하는 분은 그 자매가 유일합니다. 사실 그 자매는 모태신앙을 가진 분이었습니다. 하지만 부모님의 신앙에 대한 강요 등으로 교회에 대한 반감이 생겼고, 믿지 않는 남편을 만나 결혼 생활을 하던 중에, 남편이 같이 교회에 나가보자고 해..
Light & Delight 9월 22일 목회서신 예배는 왜 드려요? 금요일 저녁 찬양팀이 예배를 준비하고 잠시 식사를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하윤이(3살)가 밥을 먹고 놀겠다고 하는데, 곧 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하니까, “예배는 왜 드려요?”라고 물었습니다. 함께 식사하고 있던 찬양팀은 그 질문이 재미있어서 웃었고, 저는 “아빠가 안 가르쳐 주니?”라고 반문했습니다. 하윤이와 더 많이 이야기를 하지는 못했지만, 그 질문은 곧 예배를 시작해야 하는 제게 다시 한번 나의 정체성을 돌아보게 하는 질문이었습니다. 우리는 왜 예배를 드릴까요? 여러 가지 답변이 나올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주일마다 예배당을 향해 집에서 출발하면서 그 질문을 던지고 있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주일예배, 금요찬양예배, 새벽기도회,..
Light & Delight 7월 28일 목회서신 인생의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 있을까요? “인생은 문제의 연속이다”, “한 가지 문제를 풀고 나면, 또 다른 문제를 만난다”, 등의 말들은, 별로 인정하고 싶은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늘 생각하게 되고 경험하는 사실입니다. 사람이 태어나 자라면서도, “이 때만 잘 넘기면 될거야” 생각하지만, 영아기, 유아기, 유년기, 청소년기, 청년기 등 계속 문제는 찾아옵니다. 심지어 장년이 되어도 노년이 되어도 문제는 계속 있습니다. 똑같은 문제가 아니고 더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를 만납니다. 내 문제를 다른 사람에게 넘길 때도 있고, 다른 사람의 문제를 내가 받을 때도 있습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이기에 하나님께 간구하고 응답을 받아 문제를 해결합니다. 그런데 ..
뉴저지초대교회에서 full-time 사역을 시작하고 1년 정도 지나는 시점에, 나보다 먼저 초대교회에서 사역하던 목회자들이 모두 교회를 떠났다. 졸지에 나는 부교역자들 중 선임이 되었다. ‘졸지에’라는 말을 어디에 쓰는지 잘 몰랐는데, 당시 내 입장에 딱 어울리는 말이었다. part-time으로 사역한 기간을 합해도 1년이 약간 넘을 텐데, 교회의 사정도 다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선임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 부담될 수밖에 없었다. 새롭게 부교역자를 EM과 교육부 사역을 제외한, 모든 분야에서 청빙해야 했다. 문제는 부교역자들이 없는 상황에서 교회 내의 거의 모든 업무를 책임과 지휘까지는 아니더라도(?) 관찰하고 지켜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특별히 담임목사님께서 개인적인 사정으로 새벽기도회를 책임지고 인도하..
뉴저지의 가을은 정말 아름다웠다. 캘리포니아는 Golden State였는데, 뉴저지는 Garden State였다. 그 말대로 나무가 정말 많았다. 물론 미국에 나무가 더 많은 곳도 있겠지만, 7년을 로스앤젤레스에서 살다가 온 내 눈에는 세상이 온통 나무로 가득한 것처럼 보였다. 가을이 되니 단풍이 시작되었다. 미국에 오기 전에 가족과 설악산 단풍 구경을 하러 갔었는데, 뉴저지에서는 따로 단풍 구경을 다닐 필요가 없었다. 모든 길이 단풍의 예쁜 색으로 가득했다. 그리고 가을이 깊어지자 낙엽이 쌓인다. 자꾸자꾸 쌓인다. 어마어마하다. 길의 코너에 모아놓은 낙엽은 옆에서 차가 오는지 보이지 않게 만들었다. 그렇게 가을이 지나가나 싶더니 눈이 내린다. 눈이 어마어마하게 내린다. 미국 살면서 7년 만에 처음으로 ..
LA에서 뉴저지로 이주를 결정하고 이삿짐을 꾸릴 때, 미국 생활 6년 반 만에 우리 가족의 짐은 2배가 되었다. 이삿짐센터를 알아보니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견적을 내러 오는 사람들이 차라리 한국으로 가는 것이 비용이 덜 든다고, 대륙횡단은 돈이 많이 든다고 했다. 타던 차 중 하나를 팔아서 이사 비용을 마련했다. 그리고 나는 혼자서 차를 타고 대륙횡단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주변의 만류가 심했다. 혼자서는 위험하다고. 겁이 많은 나는 대륙횡단을 포기하고, 차도 보냈다. 지금까지 인생에서 별로 후회하는 일이 없는데, 대륙횡단 포기는 아직도 이불킥의 원인이다. 뉴저지에서 아이오와까지 몇 차례 왕복했고, 아이오와에서 캐나다를 거쳐서 옐로우스톤을 다녀오는 로드트립을 했기에, 대륙횡단 거리보다 훨씬 많은 운전을..
나는 살면서 처음 불면증을 겪었다. LA에서 교회 사역을 정리하고 어떤 계획도 세우지 못한 채 하루하루 살아간다는 것이, 잠을 못 이루게 할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오늘은 뭐 하지? 내일은 뭐 하지? 늘 그런 생각을 했고, 과연 내가 목회를 계속할 수 있을까? 어떤 교회에서 나를 청빙할까? 복잡한 생각이 계속 반복되었다. 그래서인지 매일 잠을 잘 수 없었다. 한 시간 정도 자면 잠이 깨고, 다시 잠이 들어도 삼십 분, 한 시간을 넘겨 잘 수 없었다. 마음을 잡으려고 말씀 묵상에 힘을 더 기울였다. 매일 묵상 글을 쓰기는 했지만, 조금 더 깊이를 가지고 쓰려고 노력했다. 사실 6년 넘게 최선을 다해 사역에 임했기 때문에 쉼을 갖는 것은 필요했던 일이었다. 나는 “주님, 딱 넉 달만 아무 일도 안 ..
교회에 엄청난 돌풍이 불어왔다. LA에서의 이야기다. 교회는 싸움에 휘말렸다. 자세한 이야기를 모두 말하기에는 지면도 시간도 부족하다. 사실 모두 썼다가 지우고 나와 관계되는 일만 쓰고 있다. 말도 되지 않는 의혹으로 담임목사님께 반대하는 세력들은 계속 교회를 어렵게 만들었다. 그리고 오랜 시간 싸움이 지속되었다. 한참 힘든 시기였는데, 담임목사님은 약속된 한국 집회를 가셨다. 그리고 목사님이 계시지 않는 주일에, 나는 2부 예배 설교를 하게 되었다. 당시 가장 많은 교인들이 모이는 예배였다. 교회를 어렵게 하는 반대 쪽 사람들은 늘 예배당 앞쪽에 앉아서 팔짱을 끼고 앉아 있었다. 설교 후 헌금 시간에 갑자기 예배당 한쪽에서 소동이 일어났다. 원로목사님이 강단으로 올라오시려고 하셨고, 교인들이 막았다. ..
LA에서 새가족 사역을 할 때였다. 2005년 초로 기억한다. 화요일 저녁에 새가족을 위한 공부가 마치고 밤늦은 시간이었는데, 교회 사무실에서 나를 찾았다. 전화를 받아보라는 것이었다. 동양선교교회 교인은 아닌데 목사의 심방을 급하게 받고 싶지만 자기가 다니는 교회의 목사님은 연락이 안 되고, 큰 교회에는 누군가 있지 않을까 해서 전화를 하셨다고 했다. 새가족 스태프 몇 분과 같이 심방을 갔다. 집안의 분위기는 무척 어두웠다.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있었던 집이란 생각이 들었다. 어떤 일 때문에 목사의 심방을 요청하셨냐고 여쭈었다. 대답은 충격적이었다. “오늘 저희 딸이 자살했어요. 오랫동안 우울증을 앓던 아이인데, 그러면서도 교회는 열심히 다녔는데, 오늘 아침에 칼로 목을 찌르고 3층 집에서 떨어졌어요..
동양선교교회에서 사역을 했던 2003년 3월부터 2009년 4월까지, 나는 정말 많은 사역을 할 수 있었다. 강준민 목사님은 나에게 여러 기회를 주셨고, 나는 목사님의 말씀에 한 번도 “No”라고 대답한 적이 없었다. 한국어 대학부 사역으로 교회 사역을 시작한 후, 새가족, 남성 큐티, 중보기도, 구도자 예배, 공동체, 영커플, 신문 제작까지, 정말 많은 사역을 했다. 어느 월요일 아침이었다. 월요일이니까 새벽예배와 기도를 마치면 빨리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일상적이었는데, 기도하는 중에 강단에서 기도하시는 강 목사님을 보게 되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뭔가 나에게 하실 말씀이 있는 것으로 생각이 들었다. 나는 목양실로 통하는 복도의 의자에 앉아서 목사님을 기다렸다. 목사님은 지나시는 중에 나를 보시고 내 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