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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더 산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하며 본문
Light & Delight 10월 17일 목회서신
하루를 더 산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하며
저는 대학에 다닐 때, 학교 도서관에서 ‘김교신’이라는 분을 알게 되었습니다. 김교신은 교단의 목회자는 아니었지만, 민족의 암흑기에 성경을 붙잡고 기독교의 본질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며 ‘성서조선’ 운동을 했던 분입니다. 44년의 짧은 생을 살았지만 민족을 위해 신앙을 위해 노력한 그에게서 깊은 교훈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번 목회서신에서는 김교신의 글 중 “12,000일의 감(感)”이라는 글을 소개합니다. 하루하루의 삶에 어떤 의미를 가지고 살 것인지 깊은 도전을 주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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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교신 - 12000일의 감(感)
1934년 2월 23일 (금요) 청. 지구의 자전에 따라 태양광선을 바라보기가 제12000회. 에디슨이 수만 회의 실험으로써 백열전구 발명에 성공하였다 하면 1만 2천회의 생애도 헛되어서는 안 되겠다. 1일은 일생이요, 일생은 1일이다. 우리가 때로는 자아의 무력한 생애에 절망하고 재생을 기하여 신기원으로 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마는 1만 2천 회의 찬스(기회: 機會)를 모두 실패에 돌려보내고 말았다면 이보다 통한사가 다시 없을 것이다. 인간 일생에 1만 2천 일은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이에 배하면소위 〈고래희(古來稀)〉가 된다.
유아가 발육할 때에 7일, 3·7일을 계산하며 백일을 축하함은 그 성장이 눈에 띄어 보이며, 따라서 일월장하는 데에 다대한 흥미를 느끼는 까닭이다. 마는 10여 세 이후로는 점차 이 흥미가 냉각하고 다음에는 아주 무관심하지 않으면 오히려 시일 가는 것을 비탄으로써 맞이하게 되는 것은 하등 성장함이 없이 정지와 위축만이 보이는 까닭이다. 인생이 날 가는 것을 기쁨으로 맞이하지 못하고 비탄과 공포로써 보내게 된다면 이보다 비참한 일이 없다.
이날 새벽에 예와 같이 가정예배 있어 윤독(輪讀)할 데를 개권(開卷)하니 차례가 바로 출애급기 제20장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 2백만 대중을 거느리고 육(肉)의 나라 애급을 출발하여 홍해(紅海)를 건너고 광야를 지나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받아 전하는 광경에 이른 것이다. 출애급한 이스라엘 백성이 다시 애급의 육을 연모하여 마지 않던 것 처럼 육과 세상을 초탈하였을 터인 나의 영(靈)이 다시 육과 세상의 포로되는 패망을 회고하면 회한의 눈물이 스스로 흐름을 금할 길이 없고 이 못생긴 죄인에게 내릴 은총을 다시금 기억하면 감루인들 섞이어 흐르지 않을 수 없다.
때마침 오전 배달은 이계신(李啓信) 군의 별세를 보(報)하여 주고 다음 배달은 나의 경외(敬畏)하는 친구가 의(義)와 그 나라를 구하여 살고자 하다가 온갖 오해와 조소 중에서 학교 교사를 사직하지 아니치 못한다는 통신을 전한다. 모두 우연이라면 우연이나, 나에게는 우연한 우연이 없다. 생각할 수 있어도 말할 수 없고 더욱 쓸 수 없는 것이 이런 경우라 할 것이다.
이 군은 1만 일도 못차는 일생으로써 별세하였다. 예수 믿은 일 외에는 아무 사업도 한 것이 없이. 수(壽)는 비교적이다, 사아대적이다. 9천 일도 못 되는 자에 비하면 1만 2천 일을 생존한 자는 매우 장수하였다 할 수 있다. 9천 일 이전에도 죽는 사람있다면, 만 일 이후에 죽기는 더 가능한 일이다. 이치는 간단하다. 아니 이치만은 매우 간단하다. 오호라, 어리석은 나의 영이여!
현대는 상하 대소의 별(別)이 없이 모두 〈이권(利權)〉관계이다. 나라와 나라 사이도 이권으로 다투고, 이권으로 화(和)하며, 대신(大臣)과 교장과 그밖에 온갖 유리한 지위도 이권화하지 않고 남은 것은 없다. 조선 같은 척박(瘠薄)한 나라에서 월수 백여원의 교사직이라면 이 또한 상당한 이권으로 취급되는 현상이다. 그런 사회에서 다른 실책이 있어서가 아니요, 망동으로가 아니요, 무슨 유리한 사업에 탐하여서가 아니요, 오로지 좀더 정직한 살림, 좀더 단순한 살림, 곧 예수의 생활 원칙대로 살려는 소원으로서 할수없이 부득이 직(職)을 포기하고 도(道)를 파지(把持)하기를 결심하였으니, 양으로는 적은 일이나 질로는 큰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기독교회의 선교 사업까지가 이권화하여 버린 이때에 우리는 여기서 한 신자(信者)를 보았다. 한 사람을 보았다. 대한(大旱)에 빗방울인가, 장마에 햇볕인가?
하나님이 모세를 불렀을 때에 불붙는 가시덤불을 보이셨고 예레미야가 부름을 받았을 때에 끓는 솥[鼎:정]과 파단행(巴旦杏) 가지를 보았다. 저들은 그 득도한 평이한 광경 중에서 위대한 진리를 판독하였다. 1만 2천 일을 당한 노둔(魯鈍)한 죄이니에게 출애급기 제20장을 읽게 하고 젊은 친구의 죽음을 고하고 참 인간의 생명적인 용약을 전하시니 이 모든 것이 무엇을 교시하려 하심인가? 우리는 무감각한 생활, 관례에 의하여 〈어제 같은〉 생활, 경이를 느낄 수 없이 둔화한 생애를 타기하는 동시에 기괴 망패(妄悖)한 해독(解讀)을 장하게 여기는 자도 아니다. 별안간에 독특한 사명이 내렸다고 하거나 창졸간에 무슨 활동을 개시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평범하게 과거 1만 2천 일의 방향으로 손잡이(핸들)를 틀어 놓고,
「12000일에 1일의 생명을 더 허하시옵거든 단 하루라도 족하오니 제발 생명의 용약이 있게 하옵소서. 과실은 없기를 기대하지 못하오나 생활 원칙, 생명의 본질만은 제발 주 당신의 것으로써 살게 하시옵소서.」
라는 기원으로써 이 날을 맞이하다. 인무원려(人無遠慮)면 필유근우(必有近憂)라 하나 우리는 너무 〈원려(遠慮)〉가 많아서 1일의 생명도 완전치 못한 것이 한탄이 아닐 수 없다. 주는 확실히 의와 그 나라만을 구하라 하시고,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 하셨다. 이제는 장수를 위하여 염려하던 일을 중지하고 무위한 시일을 낭비한 것을 회개하고 싶다. 비범한 재주를 구하여 탄식하지 말고 그 날 일에 충성의 전량(全量)을 다하지 못하는 것만을 통회하고 싶다. 사회의 구제를 위하여 비분 낙망하지 말고 나 스스로가 구원받은 자리, 그 자리의 참맛을 맛본 자로 살고 싶다. 양(量)의 세계에서 질(質)의 세계로, 지식의 권내(圈內)에서 생활의(사랑의) 세계로, 보이는 세계에서 보이지 않는 세계로 나아가고 싶다.
내가 11999회의 패배에 머리 숙일 때에 다시 하루를 허하여 주시니 이는 전만고 후만고(前萬古後萬古)에 다시 만날 수 없는 찬스로다. 이날 하루만을 전력을 다하여 싸워 하나님이 만드신 본래의 인간답게 곧 하나님답게 그리스도답게 인색함이 없이 두려움이 없이 옹졸함이 없이 비굴함이 없이 부지런하여 사랑을 라듐광(鑛)처럼 발산하면서 의롭게 믿음으로 살았다 할진대 후에 무슨 미련이 남을까. 만일 이날까지도 비겁하게 불의하게 다만 육체의 생명을 연장할진대 내 영혼아, 내일 다시 햇빛이 비치기 전에 이 썩을 육체에서 떠나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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