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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터닝포인트(28) - "두 개 더!" 본문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28) - "두 개 더!"

Happy Jin 2021. 1. 6.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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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여덟 번째 이야기 – 두 개 더!”

 

목사님, 질문이 있어요.”

 

내가 참 좋아하는 말이다. 나는 언젠가부터 이 말이 참 좋았다. 교회 생활을 하면서 무엇인가 궁금한 것이 생겼을 때, 목사에게 찾아가서 질문하는 교인이 얼마나 될까? 내가 알기론 많은 신자들은 눈치껏 신앙생활을 했다. 요즘은 그래도 교회 생활에 대해서 새 신자 교육 등을 통해서 잘 안내하기는 하지만, 예전에는 그렇지 못한 것 같았다. 교회에 처음 나가서 찬송을 왜 불러야 하는지, 기도는 왜 해야 하는지, 설교는 왜 들어야 하는지, 헌금은 왜 해야 하는지 자세히 가르쳐 주고 신앙생활을 시작한 사람들은 무척 드문 것 같다. 그러다 보니 교회 생활은 눈치가 있어야 잘할 수 있다. 옆에 사람이 찬송을 부르면 보고 따라 부르고, 기도하는 사람이 기도에 사용하는 단어나 문장을 그대로 익혀서 자신의 기도에 사용한다. 설교는 일어나 나갈 수 없으니 그대로 앉아서 듣고, 예배 때마다 설교를 하니 그렇게 하나보다 생각하고 평생 설교를 듣는다. 헌금도 남들이 하니까 어쩔 수 없이 민망한 마음에 따라 한다. 물론 십일조나 감사헌금 등은 생각지도 못하다가 어느 날 강조가 되면 겨우 하기 시작한다.

 

나는 교회에서 새신자를 위한 사역을 했었다. 앞에서 말한 것들에 대해 갑갑함이 있었기에, 교육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하나씩 설명을 하기도 했지만, 강조했던 것 중 하나는 질문하라는 것이었다. 신앙 생활을 눈치껏 하지 말고 질문하면서 하라고 부탁드렸다. 심지어는 설교에서 못 알아들은 것이 있거나,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그냥 넘기지 말고 질문하고 배울 수 있는 기회를 가지라는 것이었다.

 

뉴저지에서 전 교인들을 대상으로 말씀 묵상을 위한 이메일 ‘QT Together’를 제작하고 발송하는 일을 했다. 이미 출판된 많은 큐티 교재들이 있지만, 본문의 진행이 마음에 흡족하지 않고, 교회에서 익숙하게 사용하는 언어가 쓰였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교재를 사는 사람들이 전체 성인 교인의 5%도 되지 않았다. 그래서 교회 전체가 큐티에 참여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큐티 투게더라는 이름을 정하고 이메일을 제작했다. 결국 2,000여명의 교인들이 이메일을 받고 말씀 묵상을 시작할 수 있었다. 나는 말씀 묵상을 할 때마다 글을 쓰기는 했지만, 큐티 투게더는 매일 교인들에게 전하는 묵상 글을 쓰는 계기가 되었다. 그 중 하나의 장점은 이메일로 발송이 되니, 이메일을 받은 사람이 답장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주 있었던 일은 아니지만, 묵상을 하다가 질문이 생긴 교인들이 답장을 통해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질문에 답을 하면서 말씀을 설명하는 일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즐거움이 있었다. 목사라는 것이 참 즐거운 일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교인들의 필요를 채우는 일이 다름이 아닌 말씀에 대한 궁금한 것을 해결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니 더 좋았다. 

 

큐티 투게더가 시작되던 때에, 나의 몸에 큰 변화가 찾아왔다. 어느 날 몸이 많이 아파서 교회에 출근도 하지 못하고 며칠을 앓아누웠던 때가 있었다. 먹은 것은 토하고 설사하면서 속이 완전히 빈 상태가 되었다. 계속되는 설사에 아내에게 약을 달라고 해서 먹었다. 그런데 설사를 멈추는 약이 아닌 소화를 돕는 약을 먹은 사실을 나중에야 알았다. 덕분에 나흘이 지나도록 먹은 것은 없었고, 뱃속은 곡기가 전혀 없는 것 같았다. 일주일도 안 되는 시간 동안 3kg 정도가 빠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몸이 기운을 차린 후, 몸이 상당히 가벼워졌다는 것을 느꼈다. 무거운 몸을 움직이는 것을 귀찮아 하던 나였는데, 몸이 가벼워지니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뭔가 운동을 조금 더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자전거도 타고 있었지만, 집 근처의 피트니스 센터에 등록을 했다. 처음 등록을 한 사람에게 개인 트레이너에게 한 번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약속을 하고 트레이너를 만났다. 그는 피트니스 센터의 기구들을 사용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나는 운동하는 원리를 배우고자 했다. 혼자서 운동을 하려면 뭔가 스스로 동기를 부여하고 하는 원리가 있을 것 같았다. 트레이너는 나에게 스쿼트, 런지, 윗몸일으키기 등을 하게 했다. 각 운동마다 횟수와 세트를 정해 주었다. 그런데 트레이너는 꼭 내가 횟수를 채우면 “two more”를 외쳤다. ‘두 개 더 하라는 뜻이었다. 한 시간 정도 배우는 동안 수도 없이 두 개 더라는 말을 들었다. 나는 트레이너에게 배우는 한 시간 동아 아주 중요한 원리를 하나 배웠다. 다했다고 생각될 때, “두 개 더를 외쳐 주는 사람이 있거나, 그렇게 스스로 다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며칠 후에 금요예배 시간에 말씀 묵상을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하기 위해서 설교를 담당했다. 그때 내 설교 제목이 큐티 두 개 더였다. 말씀 묵상도 똑같은 원리가 있다. 내가 이만큼 했으면 말씀 묵상이 끝났다고 생각될 때, ‘조금 더’, ‘깊이’, 또는 넓게 보아야 할 말씀의 내용이 있는지, ‘조금 더 내 삶에 적용해야 할 부분은 없는지, 말씀에 집중해 보자는 것이었다. 성령께서 외쳐 주시는 두 개 더라는 음성을 듣고, 함께 말씀 묵상을 나누는 친구들에게서 두 개 더의 도전을 받자는 내용의 설교였다.

 

피트니스 센터를 등록한 것은 처음이 아니었다. 하지만 보통 몇 번 가다가 중단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당시에 나는 거의 일 년 이상 매일 운동을 하러 갔다. 처음에는 한 시간을 걷고, 다른 근력 운동을 했는데, 몇 개월 후에는 한 시간을 뛰었다. 매일 6마일을 뛰었다. 몸이 좋아지는 것을 느꼈다. 먹는 것도 상당히 주의를 기울였다. 양을 적게 먹기도 했지만 짜고 매운 음식을 최대한 절제했다. 그중 라면은 당시에 한 달에 두 번 정도 먹을 만큼 줄였다. 원래 나는 아침에 라면을 먹어야 힘이 나는 사람이고, 거의 매일 라면을 먹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한 달에 두 번 정도 먹고, 그것도 내가 끓여 먹는 것이 아니고 아내가 끓여 주는 라면이어서, 수프가 거의 반 밖에 들어가지 않은, 야채나 다른 재료가 많이 첨가된 싱거운 라면을 먹었었다. 그렇게 운동과 식사 습관을 바꾸니, 1년 정도가 지났을 때 내 체중은 거의 13kg나 감량이 되어 있었다. 

 

얼굴에는 날카롭기까지 하지는 않지만 턱 선이 살아나서, 그렇지 않아도 네모 둥그런 얼굴이 각진 네모 얼굴이 되었다. 배에는 식스 팩이 어렴풋이 드러나는 믿기지 않는 일이 발생했다. 아내에게 여보! 나 배에 식스 팩이 생겼어!”라고 흥분해서 이야기했더니, 아내는 하도 윗몸일으키기를 많이 해서 살이 접혀 주름이 생겼나 보다.”라고 답했다. 아무튼 배에 근육인지 주름인지 생긴 역사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그동안 깊은 곳에 숨어있느라 고생한 나의 배 근육이 당시에 잠시 얼굴을 내민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양복이 맞지 않았다. 그동안은 점점 늘어나는 허리둘레 때문에 양복이 맞지 않았는데, 이젠 모든 양복이 커서 옷을 입으면 축 처진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나름 양복을 입으면 보기 좋은 사람이었는데, 축 처진 모습으로 옷을 입고 다니니 나도 불편했지만, 나를 보는 사람들도 불편했던 것 같다. 가끔 목사님, 어디 아프세요?”라는 소리를 들었다. 나는 엄청 건강한데, 한 시간 6마일을 쉬지 않고 달리는 사람인데, 아프냐는 질문이 좀 당황스러웠다. 마침 나의 사정을 잘 아시는 분이 양복을 수선해 주시겠다고 해서 몇 벌의 양복을 수선했다. 그리고 계절이 바뀐 후에는 몸에 잘 맞는 양복을 구입해서 입었다. 40대 중반에 늘씬한(?) 몸을 가진 것이 무척 자랑스럽기도 했다. 운동은 계속되었고 그러다 20대의 몸무게(앞자리 6)로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가 되기도 했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성공적인 다이어트가 진행되는 때에 교인들로부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어떤 경우에는 나를 못 알아보고 지나치던 교인이 다시 돌아오면서 목사님?” 하고 물으며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놀라워하기도 했다. 그리고 많은 분들이 질문을 했다. “목사님, 어떻게 다이어트에 성공했나요?? 비결이 뭔가요?” 그 질문을 받고자 목회를 하는 것은 아니었는데, 그런 질문보다 성경에 대해서 신앙생활에 대해서 질문을 받고 답을 해드리고 싶었는데, 목사에게 어렵게 찾아오셔서 처음으로 던지는 질문이 어떻게 하면 목사님처럼 날씬해질 수 있나요?”였다.

 

당시에 적지 않은 명언들을 남겼다. “운동을 할 때 제일 어려운 순간은 신발 끈을 매는 순간이다.” “평상시에 눕는 것은 즐거움이지만, 윗몸일으키기를 위해 눕는 것은 고통이다.” “자전거를 타고 언덕을 오를 때, 정상을 바라보지 말고 바로 앞을 보고 꾸준히 페달을 밟아야 한다. 너무 높은 곳만 바라보는 것은 쉽게 좌절하게 만든다. 차근차근 조금씩 전진하면 언젠가는 정상에 오른다.” “쉽게 다 했다고 판단하지 말고, 조금 더, 두 번 더 할 수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등등 나 자신에게, 교인들에게 몸을 변화시킬 수 있는 원리들을 많이 나눌 수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 너무 살이 빠진 것이 보기에 좋지 않다는 말을 들었다. 중년 남자가 조금 후덕한 면도 있어야 하는데 인상이 날카로워진 것 같다는 소리가 조금 부담으로 들렸다. 그리고 어떤 교인은 목사님, 그냥 마음이 편안하고 좋은 분으로 알았는데, 독한 면이 있으시네요.”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는 조금 불편하기도 했다. 결국 체중을 더 줄이는 것은 중단했다. 그리고 조금 체중을 회복하기로 했다. 물론 처음에는 적정 선을 유지하고 예전 체중으로 돌아가는 것은 잘 막아내었다. 그리고 지금은 밝힐 수 없다. 오래전에 최고치의 체중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자칫 그때로 돌아갈까 염려가 되어서 다시 또 운동을 시작했다. “두 개 더라는 외침과 함께 우리에게는 다시라는 외침도 필요하다. 하다가 중단하면 좌절하지 말고 다시 시작하면 되는 것이니까. 언제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다시 시작하고, 조금 더 할 수 있는 힘이 남아있다는 것은 큰 복이라고 믿는다.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진화(?)되는 과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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