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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터닝포인트(26) - 낯설다. 본문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26) - 낯설다.

Happy Jin 2020. 12. 16. 0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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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여섯 번째 이야기 – 낯설다.

 

사람은 누구나 한 번 이상 낯섦을 만나는 경험을 한다. 자신이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경험하지 않았던 일을 겪게 될 때는 여러 감정이 찾아온다. 낯섦을 경험할 때 당황스러움 또는 설렘, 부담 또는 즐거움의 감정을 느낀다. 사람의 성품과 기질에 따라서 다양한 반응이 나타날 수 있다. 낯선 사람을 만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어려워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어떤 상황을 만나도 적응을 잘하는 편에 속하는 사람이다. 아주 생소한 환경에도 적응에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전혀 부담을 느끼지 않는 것은 아니다. 사실 낯선 환경을 겪고 그 환경에 오래 머물러야 하는 경우에는 일주일 몸살을 앓는다. 정말 몸이 아주 아프다. 겉으로 당황하거나 어색한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견디며 받는 스트레스가 몸으로 나타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도 일주일 앓은 후엔 잘 적응하고 산다.

 

미국 LA에 처음 도착했던 때는 12월이었다. 한국에서는 영하 12도의 날씨였는데, LA에 도착했을 때는 봄 날씨였다. 가벼운 셔츠를 팔을 걷어입고 다녀야 할 정도의 따뜻한 날씨였다. 그리고 며칠 후에 운전면허 시험을 보러 갔다. 사람들이 모두 두꺼운 옷을 입고 있었다. 사람들이 걱정하면서 나에게 춥지 않냐고 물어보는데 도대체 뭐가 춥다는 말인가 이상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딱 1년 후에 부모님께 집에 있는 겨울옷을 보내 달라고 부탁드렸다. LA에 사는 사람들은 섭씨 영상 10도 밑으로만 내려가도 추워한다. 그래도 교회에 갈 때 입는 양복 중에 겨울철에 따로 입는 것은 없었다. 코트도 트렌치코트만 있었다. 내가 추위를 많이 타는 편도 아니었다. 그러다 뉴저지로 갔다. 12월에 교인 가정의 장례식이 있었다. 나는 장례식을 따라갔다. 검은색 양복 중에는 겨울 양복이 하나도 없었다. 여름 양복을 꺼내 입었다. 코트는 검은색이 없으니 입을 수 없어서 그저 여름 양복을 입고 장례식에 참석했다. 하관 예배가 드려지는 장지에 도착했을 때, 바람이 불고 날이 흐렸다. 영하로 내려가는 기온에 여름 양복을 입고 얼어 죽을뻔했다. 그리고 부랴부랴 검은색 겨울 양복과 코트 등을 샀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정말 추운 겨울 날씨에 적응하며 살았다.

 

아이오와에 와서 낯선 겨울을 만났다. 10월부터 내리는 눈은 기본이고, 4월까지도 눈이 온다.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24시간 이상 불 때도 있다. 섭씨 영하 30도 밑으로 내려가는 기온도 낯설었다. 섭씨와 화씨온도가 같아지는 온도는 영하 40도라고 하는데, 비슷한 지점까지 내려가는 일을 경험한다. 텔레비전에서 끓는 물을 공중에 뿌려서 얼음으로 변하는 실험을 하는 곳이 바로 아이오와, 우리 동네였다. 겨울과 눈은 적응하는 것이 아니라 견뎌내는 것이라는 말에 완전히 공감했다. 사실 글을 쓰고 있는 2020년 12월, 4년째 아이오와의 겨울을 맞이하지만, 눈이 올 때마다 낯설고 추위도 낯설다.

 

에임스에서 사역하면서 매우 특별하고 낯선 환경을 경험했다. 교인 중 그 누구도 평생, 이 교회와 이 동네에 머물고자 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누구나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떠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다. 사실 나도 교회나 목회를 생각하면 사람들이 찾아오고, 교회에 정착하는 것, 정착하게 하는 것이 목표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교회를 사랑하고 헌신하게 할 수 있을까? 평생 나의 교회라고 생각하게 할 수 있을까? 그렇게 만드는 것이 목회를 잘하는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교인들을 만나보니 누구나 때가 되면 떠날 준비를 하는 사람들이었다. 유학생들은 목표가 학위를 받는 것이니 떠나는 것이 당연했다. 4년에서 5년이 지나면 누구나 졸업하고 떠난다. 그 시간이 지나도 떠나지 못하면 아쉬워하기도 불안해하기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데 유학생이 아닌 연구원이나 교수들도, 평생 이곳에 머무는 것보다는 아이들이 자라고, 또 좋은 기회가 되면 조금 더 큰 도시로, 아니면 더 좋은 환경으로 떠나려고 하는 마음이 보였다. 목사를 비롯한 교인 중 누구도 완전한 정착과 평생 머물 곳으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교회로 모인 것이다. 정말 낯선 환경이다.

 

봄이 되고 5월이 되어 졸업하는 시즌이 되니, 학생들이 떠나기 시작했다. 에임스의 청년들은 가을 추수 감사 휴가 기간, 가을 학기가 끝나고 봄학기가 시작되기까지의 방학 등, 아주 잠깐의 시간만 있어도 에임스에서 벗어난다. 한인 식당 하나 찾을 수 없는 추운 곳에 있는 것보다는, 3시간에서 6시간 정도 운전을 하더라도, 비행기를 타고서라도 조금 더 따뜻한 곳, 조금 더 큰 도시로 가서 한식도 마음껏 먹고 놀 수 있는 곳을 찾아간다. 그런 학생들의 마음이 이해되었다. 그런데 그 청년들이 졸업하면 완전히 에임스를 떠난다. 에임스를 집처럼 그리워하는 청년들도 있다. 그래서 한두 번 정도는 졸업 후에 에임스에 놀러 오기도 한다. 하지만 몇 년 지나면 오지 않는다. 왜냐하면, 가족처럼 생각하고 오랜 친구처럼 지냈던 사람들이 떠나고 없는 곳에, 올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유학생 중 교회에서 열심히 사역에 참여하던 자매를 심방했다.나와 아내에게 그 자매가 한 가지 기도 요청을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목사님, 제가 교회에서 열심히 섬기고는 있지만, 혹시라도 제가 오랫동안 에임스에 머물게 해 달라는 기도는 하지 말아 주세요.” 그 말을 듣고 그 자매가 졸업하고 에임스를 떠날 때, 에임스에 돌아올 상황을 만들지 말아 달라고 웃으면서 기도하기도 했다. 그렇게 떠남을 경험하기 시작했다. 한 번은 10명의 학생이 한꺼번에 졸업한 적이 있었다. 졸업한 학생들은 모두 타지로 떠났다. 수백 수천 명이 모이는 교회에서 10명이 교회를 떠나는 것은 티도 나지 않는 일이다. 하지만 에임스는 많이 모여도 5~60명 교인이 예배를 드리는데, 그중에 낯익은 10명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상당히 큰 허전함이다. 떠나는 교우들은 모두 앞에서 짧은 인사말을 한다. 그런데 그 일을 계속해서 경험하는 것은 낯선 일 중에서도 견디기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런 내용을 이미 전임 목사님께 전해 들었다. 시간이 되면 사람들을 떠나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더 마음이 무거웠던 것은, 교회에서 떠날 사람들은 어떤 교인이든지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이었고, 누가 오게 될지는 전혀 예측할 수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10명이 졸업을 한다는 것은 이미 계획이 되어 있는 일이지만, 10명이 교회를 찾아온다는 것은 기적이 아니고서는 계획할 수 없는 일이었다. 감사한 것은 10명이 졸업을 했던 그해에, 새로운 학기에 교회에 온 청년들이 10명이 넘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하려고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그럴 때도 있다는 것이다. 아마 주님께서 내가 충격을 많이 받을까 해서 위로를 주신 것 같다.

 

나는 교회와 목회를 다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교회는 계속 모이고 정착해야 하는 곳인가? 교회에 사람들이 많이 나오는 것, 그래서 헌금이 늘어나는 것이 교회 부흥의 본질인가? 대답은 아닐 수 있다는 것이었다. 교회의 부흥은 믿음을 가진 사람이 공동체의 일원으로 하나님 나라를 위한 사람으로 성숙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그 과정에서 사람들이 교회로 오고 정착하는 것은 상황에 따라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는 일이다. 물론 복음을 전하고 새롭게 예수를 믿고 교회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생기고 많아지는 것은 부흥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 일이 매일, 쉽게, 예측할 수 있게, 정기적으로 일어나는 일은 아니지 않은가? 그래서 교회의 부흥을 사람들이 모이는 숫자로 판단하는 것은 전부가 아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 번은 미국에 있는 기독교 방송에서 나에게 매주 설교 한 편을 방송에 내보낼 수 있게 해달라는 요청을 했다. 나는 기독교 방송국에서 목사에게 설교 방송을 요청하는 것이, 방송 사역에 헌금해달라는 요청과 연결된 것을 알기에 처음에는 거절했다. 우리 교회가 후원을 받아야 하는 교회이지 다른 기관에 후원을 할 만큼의 여력이 있는 교회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간곡한 부탁에 설교 방송을 하기로 했다. 하지만 후원을 할 수는 없다는 말씀을 드렸다. 그랬더니 6개월은 후원금이 없어도 설교 방송을 할 텐데, 그 이후에 교회가 부흥되고 헌금이 더 많아지면 후원을 해달라고 하기에 그럴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씀을 드렸다. 나는 교회의 부흥이 사람이 많이 모이고, 헌금이 많이 들어오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씀도 드렸다. 그리고, 설교 방송을 도시에 사는 어르신들이 많이 들으실 텐데, 그분들이 내 설교에 은혜를 받고 에임스로 오셔서 교회가 큰 부흥(?)을 이루는 일은 없으리라 생각했다. 아무튼 그렇게 후원금을 내지 않고 만 1년 방송 설교를 했었다.

 

얼마 전에도 교회를 위해 헌신을 아끼지 않았던 한 가정과 청년 자매가 에임스를 떠났다. 떠나보내는 것이 4년 정도 되었으면 익숙해질 만도 한데, 겨울과 사람을 떠나보내는 것은 정말 익숙해지지 않는다. 늘 낯설다. 그래도 새벽마다 기도하는 것이 있다. “하나님, 우리 교우들, 우리 청년들 잘되게 해 주세요. 그들의 미래를 형통하게 열어 주세요.” 이 기도를 날마다 드린다. 그러다가 전화를 받는다. “목사님, 좋은 소식이 있어요”, “목사님, 기도 응답이 되었어요”. 그 소리를 들으면 기쁘기도 하지만, 가슴이 허전해진다. 떠난다는 소식이기 때문이다. 나는 “하나님, 이렇게 잘 되는 것 말고 다른 방법도 좀 생각해 주세요”라고 다시 기도하지만 어떻게 그 기도에 응답하실지는 모르겠다.

 

낯선 환경이 늘 부담스러운 것은 아니다. 내가 기다리던 낯선 일들도 있다. 생각만 했지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일들이다. 매일 새벽 말씀을 전하는 것, 매 주일 계속 설교하는 것, 즉 담임목사로 사역하게 된 것도 에임스에 와서 처음 경험하는 낯선 일이었다. 하지만 기다리던 일이었다. 일주일에 일곱 번 설교하는 일은 어떤 목사도 부담스러워하는 일이다. 나도 부담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즐겁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매일 씨름하는 일, 묵상과 연구를 글로 옮기는 일, 나에게 깨닫게 하시는 일들을 사람들에게 매일 전하는 일은 낯선 일이었지만 나를 즐겁게 하는 일이다. 그러나 매일 매주 설교를 하는 것이 부담스러웠던 딱 한 가지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아내가 내 설교를 매주 매일 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부목사로 있을 때는 아내가 다른 사람의 설교를 들을 기회가 분명히 있었고, 또 아내가 인터넷을 통해 다른 목사님들의 설교를 듣는 일도 늘 있기는 했지만, 매일 내 설교를 들을 수밖에 없는 환경에 지내게 된다는 것이 미안하기까지 했다. 내가 설교를 썩 잘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즐거워한다고 잘하는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잘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은 하지만, 그렇다고 결과물이 늘 잘 나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컸는데, 감사하게도 아내는 내 설교를 잘 들어준다.. 심지어 좋다고 말할 때도 있다. 다른 사람들의 설교보다 내 설교가 더 귀에 잘 들어온다고 하기도 한다. 분명히 성령께서 아내에게 다른 말씀을 주시는 것 같다. 이제는 아내만 아니라 시온이도 매일 매주 내 설교를 듣는다. 우리가 에임스에 왔을 때 시온이는 이미 대학생이라 학교가 있었던 클리블랜드에 살면서 미국 교회를 나가고, 그 교회 목사님이 워낙 유명한 설교자였기에 내 설교를 매주 들을 필요가 없었다. 시카고에서 대학원을 다닐 때도 좋은 한인 교회를 만나서 내 설교를 매주 듣지 않아도 되었다. 그런데 졸업하고 쉬는 시간을 가지며 에임스에서 6년 만에 가족과 함께 지내면서, 아빠의 설교를 매주 듣게 되었다. 매주 딸과 아내 앞에서 설교하는 것도 낯설다. 하지만 그래도 감사한 것은 말씀을 잘 듣고 때로 질문도 하고 토론도 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즐겁고, 감사하다.

 

낯설다는 것은 부담도 되지만 즐거움을 찾을 기회다. 그러나 그 즐거움은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일은 아니다. 미래를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의 미래를 위해 준비한다. 미래를 준비하는 것은 낯섦을 만날 준비를 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자신이 준비했던 것이 전혀 적용되지 않을 것 같은 낯선 환경을 만난 것 같아서 당황하기도 하고 아플 때도 있다. 그래도 조금 견디다 보면 그동안의 준비가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때가 분명히 온다. 그렇게 확신할 수 있는 이유가 있다. 나와 동행하시는 하나님, 지금까지 나의 모든 길에 동행하시며 나를 준비시키신 하나님이, 결코 실패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낯섦을 경험하면서 내가 실패한 것은 아닐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늘 익숙한 일만 경험하는 것이 성공은 아니다. 생각의 모든 패러다임을 바꿔야 하는 경우도 있다. 생각이 바뀐다고 실패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일이 이루어지는 것이 진정한 성공이다. 내가 계획한 일을 그대로 이루고,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는 일이 성공은 아니다. 성공은 그렇게 평가하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낯선 곳으로 가는 것이 버거운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곳에 진짜가 있다면 인생의 마지막까지 낯섦을 경험한다고 해도 손해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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