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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터닝포인트 (3) - 왜 내가 거기에? 본문
1991년 여름, 나는 캐나다 에드먼턴에서 두 달이라는 시간을 보냈다. 당시 해외여행이 자유화된지 얼마 지나지 않았던 때였고, 외삼촌과 아버지의 강력한 권유(사실은 거의 강제)로, 동생과 외사촌 동생들과 에드먼턴 University of Alberta에서 어학연수를 하게 되었다.
사실 나는 여름을 그렇게 한가하게 보낼 사람이 아니었다. 여름에는 할 일이 정말 많았기 때문이다. 대학부 수련회, 전도여행, 교회 중고등부 수련회, 유년부, 초등부 성경학교만 해도 방학의 절반 이상은 계속 바쁘게 지내야 했다. 그리고 그 일들을 준비하는 시간까지 합하면 10주 정도의 방학 중 8주 이상의 시간을 그 일들을 하며 보내는 것이 내 방학의 일정이었다. 그 모든 일은 어느 정도 보조를 맞추는 수준이 아니라, 주도적으로 일을 계획하고 진행해야 했다. 사실 나는 학기 중에는 조용히 수업에 참여하고(공부라기 보다는 참여), 수업이 없을 때는 테니스를 치고, 사영리를 들고 다니면서 전도를 했다. 그렇게 학기 중에는 충전을 했고, 방학이 되면 충전된 에너지를 모두 써버리며 시간을 보냈었다. 그랬던 나에게, 한가하게 해외 어학연수라니 받아들이기 힘들었고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일은 내 뜻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이미 여권, 비행기 티켓, 비자 등이 다 준비되었고, 학기가 끝나면 바로 다음 날 비행기를 타야 했다.
당시에 나의 멘토셨던 목사님께 전화를 했다. 그때는 핸드폰도 삐삐도 없던 시절이라, 학교 공중전화로 목사님 댁에 전화를 했던 기억이 난다. 하소연이었다. 내가 이렇게 바쁘게 교회와 주님을 위해, 영혼 구원을 위해 일해야 하는데, 내가 무슨 호사를 누리면서 해외여행을 해야 하냐고 탄식했다. 그런데 목사님이 “진영아, 넓은 세상 한 번 보고 와라. 교회 일이나 전도하는 일은 너 말고도 할 사람 많다. 네가 아니어도 하나님은 할 일을 다 하신다. 이번에 좀 쉬면서 세상이 넓다는 것을 경험해라.” 목사님은 그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순종했다.
김포공항에는 자식들이 처음 해외에 나간다고 외할아버지 외할머니를 비롯한 온 가족이 출동해서 사진을 찍고 배웅을 해주셨다.(사진 첨부) 여행하기 얼마 전에는 해외여행 수칙을 배우느라 소양교육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정말 옛날이야기다.
에드먼턴에는 학교 어학연수 프로그램이 시작하기 두 주 전에 도착했다. 그래서 동생들과 자동차를 렌트해서(당시에 난 운전도 못했다) 록키산맥을 지나 밴쿠버와 빅토리아 아일랜드, 그리고 미국으로 넘어와 시애틀을 거쳐서 아이다호를 지나 다시 캐나다로 들어가 캘거리를 지나는 로드트립을 했다. 세상은 정말 넓었다. 내가 알던 세계가 아니었다. 지평선을 처음 봤다. 수천 미터가 넘는 산들에 여름에도 눈이 쌓여 있었다. 그렇게 여행을 하고 에드먼턴으로 돌아왔고 곧 프로그램이 시작되었다.
에드먼턴은 정말 조용한 도시였다. 미국에서 캐나다로 다시 들어갈 때, 입국 심사관이 에드먼턴으로 간다고 하니까, 못 들여보낸다고 그랬다. 너희 같이 젊은 학생들이 그렇게 심심한 곳으로 가면 안 된다고, 캘거리로 가면 입국을 허가한다고 할 정도였다. 캘거리 지나 갈거라고 했더니 그 때서야 도장을 찍어주었던, 입국 심사대가 그렇게 평화로운 적도 있었다. 진짜 옛날 이야기다.
에드먼턴에 있었던 U of Alberta는 학교도 깔끔했고, 공부하면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기에는 너무 좋은 곳이었다. 그래도 내 마음은 많이 허전했다. 놀라울 정도로 웅장한 대륙을 봤어도, 조용하고 깨끗한 학교에 있어도 허전한 마음을 달래기 어려웠다. “내가 왜 지금 여기 있어야 하지?”라는 생각만 계속 떠올랐다. 갑자기 여행을 준비하면서, 동생들과 라면 30개짜리 다섯 박스를 각자의 가방에 한 박스씩 넣느라 책도 챙기지 못했다. 그래도 로이드 존스의 에베소서 강해 1권과 성경책을 넣었기에 쉬는 시간마다 잔디밭에 앉아서 책을 읽고 성경을 읽을 수는 있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을 때, 나는 요한복음 11장을 읽었다. 나사로를 살리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읽다가 잠시 눈을 감고 누웠다. 그런데 갑자기 내 귀를 울리는 큰 소리를 들었다. “진영아! 나와라!” 나는 깜짝 놀라 일어나서 주변을 살펴보았다. 그곳에 내 이름을 그렇게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같이 온 한국 사람이라고는 동생들 밖에 없는데, 이 녀석들이 내 이름을 부른다는 건, 맞기로 작정한 것인 아니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고… 아무도 없었다. 그 날은 다른 날보다 훨씬 조용한 날이었다. 그런데 누가 나에게 나오라고 소리를 지른 것일까? 읽고 있었던 성경을 펴서 다시 요한복음 11장을 읽었다. 예수님께서 무덤 속에 있었던 나사로에게 나오라고 큰 소리로 외치셨다. 그때 나는, 나를 부른 그 음성이 주님께서 나를 부르시는 소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한참 일해야 할 시간에, 한가롭고 호사스럽게 해외 어학연수나 하러 오게 되었고, 그 웅장한 자연을 보면서도 영혼 없는 감동으로 사진만 찍으면서 허전함을 이기지 못하던 나는, 무덤 속에 있었던 나사로처럼 무기력한 존재가 되었었다. 두 달이라는 시간을 이렇게 보낼 수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무기력하게 사는 나를, 일어나서 나오라고 주님께서 부르신 것이다. “그래, 뭔가 여기서도 할 일이 있고 배울 것이 있겠지. 여기서 살아야 하는 시간에도 주님께서 계획하신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겠지”라는 생각이 속에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주일예배를 드리려 물어물어 한인교회를 찾아갔다. 교회 예배 시간에, 처음 나온 사람이라고 소개를 하라고 해서 인사를 했더니, 목사님께서 내가 다니던 보성교회 이범구 목사님을 아신다고 하셨다. 나는 잘됐다 싶었다. 다른 교회 찾아다니지 않고 그냥 여기 있는 동안 그 교회를 다니면 될 것 같았다. 예배 후에 식사를 하고 청년들이 모였다. 오후 예배 때 청년들이 특송을 한다고 하면서 준비를 시작했다. 그런데 기타 소리가 좀 이상했다. 튜닝이 안 된 것 같았다. 그런데도 그냥 노래를 하면서 준비를 하길래, “제가 기타를 쳐도 될까요?”라고 했더니 청년들이 모두 좋아한다. 사실 아무도 기타를 제대로 치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튜닝을 하고 기타를 치면서 찬양 연습을 시켰다. 갑자기 내가 찬양 리더가 되었다. 그렇게 두 달 동안 주말마다 나는 교회에 가서 청년들과 시간을 보냈다. 함께 찬양을 하고 성경공부를 했다. 주말에 여행을 더 많이 못한 것이 아쉬웠지만 그래도 나는 사람들을 만났다.
외삼촌의 소개로 만난 부자 할머니의 집에 초대되었을 때, 그 집에 아무도 안 치는 피아노를 내가 쳤다. 내 연주를 들으신 그 할머니가 한국 가지 말고 같이 살자고 하셨다. 그때 거기 눌러앉았으면 지금 얼마나 영어를 잘했을까, 돈 걱정 하지 않고 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가끔 한다. 두 달을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서울에 돌아왔을 때, 내 인생에서 제일 영어를 하고 싶었던 때로 기억한다. 지나는 길에 만나는 외국인들에게는 무조건 말을 걸었다. 길 안내도 많이 했고 심지어 전도까지 하면서 영어로 이야기를 했다. 그때 계속 영어를 했다면 지금 이 고생은 하지 않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크다.
두 달 동안 많은 일을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주님의 부르심에 깨어난 나는 내가 살아있다는 생각으로 시간을 보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뚜렷하게 보이지는 않았는지 모르지만, 그 일을 보려는 마음을 열어놓고 지냈다. 그래서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좋았고 감사했다. 지나치는 만남도 모든 것이 소중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보내게 되었다.
세상에는 내 뜻대로 안 되는 것이 많기는 하지만, 살만한 이유와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때로 죽은 것처럼 살아야 하는 순간들도 있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일어나서 밖으로 나와 걷다 보면, 내가 살아있어야 했던 이유와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그것을 보여 주시는 분이 주님이시다. 피곤해서 잠깐 잠이 들어있을 수 있겠지만, 그런 나를 향해서 주님이 부르신다. “진영아! 나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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