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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터닝포인트(5) - 그리스도의 머슴들(SOUL) 본문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5) - 그리스도의 머슴들(SOUL)

Happy Jin 2020. 9. 5.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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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L(Servant of Ubiquitous Lord, 그리스도의 머슴들)에 대한 이야기는 내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글로 표현하는 것에 한계와 부담을 느낀다. 왜냐하면 함께 했던 형제자매들이 많았고, 지금도 끊임없이 같은 열정으로 주님을 섬기기 위해 진화하며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86년에 대학 입학을 앞둔 나는, 고등학교 때 합창반과 중창단에서 함께 하던 선배들이 남해안 소록도에 다녀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86년 2월에 있었던 여행에는 무슨 이유인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나는 함께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여행에 같이 갔던 선배들이, 같은 해에 개교한 과학기술대학교(KAIST)에 전도집회를 가자고 했고, 5월에, 과학기술대학교 강당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찬양 전도집회를 했고 나는 그때부터 모임에 합류했다. 과기대에서 상당수의 크리스찬 학생들과 교수님들을 만날 수 있었고, 지속적인 교제가 시작되었다. 

 

SOUL 모임은 나에게 무척 특별했다. 아마 나에게만 아니라 함께 하는 지체들이 모두 특별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처음에 고등학교 동문들로 시작했으니, 교회도 교단도 다르고, 학교도 다르고, 학교에서 참여하던 선교 동아리도 달랐다. 그러니 오직 예수를 믿는다는 것 말고는 모든 것이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였다. 그리고 그해 여름, 남해안 전도여행에 참여했다. 전도여행을 위한 준비 모임 때, 현재 한국 CCM 사역의 대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송정미를 만났다. 나랑 동갑이라 지금까지도 서로 “정미야”, “진영아” 하면서 친구로 지낸다. 우리는 모일 때마다 함께 찬양을 인도했다. 

 

86년 여름 전도여행, 30여 명의 지체들이 고속버스를 타고 정말 오랜 시간을 달려서 전라남도 고흥군 녹동에 도착했다. 그곳에 있는 녹동 유치원에서 베이스캠프를 마련할 수 있었고, 함께 예배하고 공부하며 수련회와 같은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수요일 오전에 소록도에 들어갔다. 소록도 동성교회라는 곳에서 한센병 환자들을 만났다. 함께 예배하고 찬양하고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당시에 우리는 SOUL이라는 이름이 없었다. 그래서 동성교회 성도들은 우리를 ‘동성 선교단’이라고 부르시며 좋아하셨다. 

 

그리고 우리는 거금도라는 섬을 알게 되었다. 거금도는 소록도 옆에 있는 섬이다. 녹동에서 3-40분 정도 배를 타고 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 글을 쓰다가 궁금해서 잠깐 지도를 찾아보니, 지금은 녹동에서 소록도를 거쳐 거금도까지 이어지는 거금대교가 생겼다. 당시에 섬에는 16개 마을이 있었다. 우리는 여름과 겨울로 전도여행을 가면서, 팀을 이루어서 그곳 마을에 있는 교회를 베이스로 각 마을을 전도하며 어린이들과 성경학교를 하는 등 마을 전도 활동을 했다. 전도여행을 가면 월요일 밤에 녹동에 도착해서 예배를 드리고, 화요일은 하루 종일 한 학기 동안 공부했던 내용을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다. 당시에 기독교 세계관, 문화관, 선교, 공동체, 예배, 그리고 하나님 나라 등에 대해서 엄청난 토론을 하며 공부했던 기억이 있다. 아마 지금도 나의 신앙과 신학의 기초에는 당시에 공부했던 내용들이 바닥에 깔려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수요일 오전에 소록도를 다녀와서, 수요일 저녁에 거금도를 들어가 금요일까지 사역을 했다. 이후에는 일주일로 사역이 부족하다고 해서 주일을 포함해서 열흘 간 섬에서 아예 살았던 적도 있었다.

 

SOUL 모임은 서울과 대전에서 계속 모였다. 서울에서는 매주 월요일 저녁마다 모임을 갖고 예배와 말씀을 나누고 기도했고, 대전에서는 과기대에서 기독학생회가 만들어져서 모임을 가졌다. 그리고 한 한기에 한 번 정도는 교류하는 모임을 했고, 모임은 전도여행을 위한 준비를 계속했었다.

 

대학 입학하던 날부터 같은 과에서 아주 친하게 지냈던 친구가 있었다. ‘이강수’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강수는, 학교 생활을 특이하게(?) 하는 나를 많이 불쌍히 여기면서 많이 도와주었다. 방학이 끝나고 학교에서 만나 방학 동안의 일을 나눌 때면, 나는 전도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했고, 강수는 꼭 한 번 같이 가고 싶다고 했다. 그러다가 나는 2학년 1학기를 마치고 휴학을 결정했고, 강수는 졸업까지 계속 학교를 다니기로 했다고 해서,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학교에서의 생활이니, 여름에 전도여행을 같이 가기로 했다. 1학년 때부터 계속 강수는 예수님에 대해서 관심이 많다는 것을 나에게 말했다. 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성경 이야기를 나누면서, 예수님을 구주로 인정하고 인생의 주인으로 영접하라고 권했다. 하지만 강수는 늘 “나같이 더러운 죄인이 어떻게 거룩하신 예수님을 삶에 영접할 수 있어?” 하면서 마음을 열지 않았다. 그랬던 친구와 전도여행을 같이 간 것이다. 당시에 나는 거금도의 ‘성치’라는 마을로 팀이 정해져서 강수와 함께 성치로 갔다. 성치 교회에서 지내면서 전도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강수는 전도에 참여하지는 않았고, 그곳에 있었던 ‘김평화’라는 당시 5학년이었던 남자아이와 계속 같이 놀았다.

 

목요일 아침이었다. 아침에는 각자의 묵상 시간이 있어서 나는 성치 마을의 등대 쪽에 나가서 혼자 말씀을 묵상하고 있었는데, 강수는 아침 일찍부터 평화라는 아이와 해변에서 놀고 있었다. 해변에 앉아 노는 둘을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둘이 벌떡 일어나서 내가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 아침부터 숨이 차게 뛰어온 강수는 “진영아, 나 방금 평화랑 같이 예수님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영접하는 기도를 했어”라고 했다. “평화가 영접했어?”라고 물었던 내게, “아니, 내가 영접했어”라고 강수가 대답했다. “어떻게 그렇게 했어?”라고 물었더니, “예수님이 내 삶에 들어오셔야 내가 깨끗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 내 죄의 문제만이 아니라, 내 삶이 온전해지려면 예수님이 내 안에 계셔야 하는 거 맞지? 그래서 평화랑 같이 기도했어.” 그 말을 듣고 나는 정말 펑펑 울었다. 성치 교회 사모님께서 아침 식사 준비가 되었다고 하셔서 교회로 들어가서 아침 밥상 앞에 앉았는데, 그날 아침 메뉴가 미역국이었다. 전도사님이 나에게 식사 기도를 하라고 하셨는데, 기도를 시작하자마자 목이 메어서 기도는 계속 중단되었다. 내 평생 가장 긴 식사 기도, 20분. 사모님은 미역국을 다시 끓이셔야 했다. 우리 팀은 강수가 예수님을 영접한 것이 성치 마을에서 느낀 가장 큰 기쁨이었다.

 

금요일 밤, 각 팀의 사역이 마치고 녹동 베이스캠프에 모두 모였을 때, 서로의 사역을 보고하면서, 강수가 예수님을 영접했다는 보고를 했고, 강수가 거듭남을 축복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모두가 궁금했던 것은 강수가 과연 가톨릭에서 개종하는가였다. 그런데 강수는 개종하지 않겠다고 했다. 강수는 자기처럼 생각하면서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영접하지 못하는 가톨릭 신자들이 많다고, 그래서 자신이 성당의 교사가 되기 위해 준비하고, 가르치게 되는 학생들에게 예수님을 영접할 수 있도록 인도하고 싶다고 했다. 강수는 그렇게 SOUL의 제1호 가톨릭 멤버가 되었다. 제대 후에 학교에 복학했을 때, 강수는 4학년 2학기 졸업을 앞두고 있었다. 2년 동안 만나지 못했었는데 나는 강수와 이야기하면서, 성당의 교사가 되어 예수님을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강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의 인생의 주인이 되어서 섬세하게 그를 인도하시는 주님의 손길을 느끼면서 다시 감격했었다.

 

SOUL 전도여행은 우리 모두가 영혼을 품는 마음을 가졌던 기회였다. 섬에서 사는 학생들과 가정들의 생활을 알 수 있었고, 그곳에도 교회를 세우고 사역하는 여러 사역자들을 만났었다. 함께 전도여행에 참여하는 지체들의 삶을 보면서 서로가 격려와 도전이 되었다. 치열하게 공부하며 토론했던 일들, 치밀하게 전도여행을 준비했다고 해도, 철저하게 하나님께 맡기고 한 걸음씩 움직였던 일들이 아직도 생생하다. 한 영혼을 부둥켜안고 간절히 울부짖으며 기도하던 지체들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우리가 함께 했던 찬양과 기도 속에는 늘 하나님 나라를 향한 갈망이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성장해서 지금은 중년이 된 지체들은 아직도 그 열정과 갈망으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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