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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터닝포인트 (1) - 부르심? 본문
중학교 3학년 때였다. 여름에 교회 수련회가 있었는데, 그 해에는 밖으로 나가지 않고 교회에서 수련회를 했다. 중학교 때부터 대학 졸업할 때까지 수련회를 여름과 겨울로 모두 참석했는데, 그 중에서도 나에게는 가장 재미 없었던 수련회로 기억한다. 무슨 말씀을 들었는지도 모르겠고, 그저 나는 중등부 회장으로서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것 같다.
수련회 마지막 날 마지막 시간에, 수련회를 마친 소감 또는 간증을 발표하는 시간이 있었다. 발표 순서가 정해졌고 회장이던 나는 제일 마지막에 발표하게 되었다. 그런데 내 동기 남자 친구들이 간증을 하면서, 수련회를 통해 은혜를 많이 받았다고, 목사가 되기로, 선교사가 되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수련회를 마치고 목사나 선교사가 되겠다고 하면, 그 친구가 수련회 때 제일 은혜를 많이 받은 친구로 인정을 받았다. 문제는 나다. 나는 은혜를 받은 것도 아니고 멍하니 시간만 보냈는데, 친구들과 비교될 것을 생각하니 아찔했다. “무슨 은혜를 받았다고 하지?”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겠다고 해야 하지?” 온통 머리가 복잡했는데, 친하게 지내던 네 명의 친구들이 모두 비슷한 간증을 하는 바람에 마지막 순서로 발표해야 하는 나는 급하게 은혜를 조작할 수밖에 없는 시간이었다.
나는 모태신앙은 아니었어도 어렸을 때부터 교회에 다녔고, 초등학교 4학년 때 아버지를 전도해서 교회로 인도하고, 은행원이셨던 성실하신 아버지는 1년 만에 세례를 받고 집사가 되시고, 교회의 재정을 담당하셨다. 교회는 아버지의 노력으로 재정적으로 든든할 수 있는 기반이 만들어졌다. 목사님의 사택도, 교회의 증축도 이루어졌다. 아버지가 교회 다니신지 7년만에 장로님이 되셨으니, 내가 중 3 때는 교회 안수집사님으로 좋은 역할을 하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게 아버지 덕에, 나는 목사님의 사랑도 많이 받았고, 초등학교, 중학교를 거치면서 교인들로부터 많이 사랑 받는 학생이었다. 그랬던 내가 “저는 이번 수련회가 별로였어요”라고 말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그때 나중에 의사가 되고 싶은 마음은 있었다. 의사가 뭘 하는지 어떻게 될 수 있는지 자세히 모르지만, 좋은 일을 한다고 생각했고,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직업이라고 생각해서 그랬던 것 같다. 그렇다고 앞에 나가서 “저는 좋은 의사가 되려고 합니다”라고 말하는 것도 이상했다. 수련회 마치고 좋은 의사? 그게 뭐? 그런 반응이 나오겠지. 그때 생각난 인물이 있었다. 슈바이처! 의사였던 그가 목사이고 신학자이고 선교사이기도 했다. 음악가이기도 했다. 당시에 집에 있었던 두꺼운 슈바이처 위인전을 읽은 덕분에 그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 “그래! 이거다!”
내 차례가 되어서 앞에 나가서 발표했다. “저는 이번 수련회를 마치고 마음에 새로운 다짐을 하나 했습니다. 저는 의사가 되고싶은 마음이 있는데, 슈바이처처럼 의사가 된 후에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어서 더 많은 사람들의 몸과 영혼을 치료해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의사가 어떻게 되는지도 모르는 놈이, 목사는 한 번도 생각하지 않은 놈이, 친구들보다 못하다는 소리를 들을까봐 자존심에 그렇게 말했다. 중등부 선생님들은 나의 짧은 발표에 칭찬도 해주셨고, 나의 말은 목사님께 전달되었다.
나는 집에 와서 부모님께 진지하게 말씀을 드렸다. “오늘 교회에서 목사가 되겠다고 했어요.” 이 소리를 들으신 아버지 어머니는 “무슨 소리냐? 공부나 열심히 해라!”라고 하실 줄 기대했다. 그런데 심각한 얼굴을 하셨던 부모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아주 어렸을 때, 외할머니와 함께 우리 집에 오셔서 너에게 안수기도를 해주셨던 권사님이 한 분 있었는데, 그 분이 너에게 안수기도를 하시면서, 이 집 큰아들 나중에 목사가 될 것이라고 하셨어” 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리고 아버지는 “좋은 목사가 되도록 노력해라”라고 하셨다. 내 예상을 모두 빗나갔다. 아버지는 다음 날 목사님을 만나고 오셔서, 목사가 되기 위해 준비해야 할 책들을 사모으기 시작하셨다. 신학사전, 주석 등을 전집으로 사서 모으셨다. 귀한 책들이라 나중에 구하기 어려우면 안 된다고.
신학대학원 원서를 쓸 때가 되었을 때, 나는 몇 가지 고민이 되었다. 첫째는, 중학교 때 내 앞에서 목사나 선교사가 되겠다고 한 친구들은 하나도 목사도 선교사도 되지 않았다. 아예 교회를 안 나가는 친구들이 대부분이었다. 대학생 때 교회에 내 동기들은 거의 여자 친구들이었다. 그래서 도대체 그 녀석들은 뭐지? 하는 고민이었다. 둘째는, 그런 식으로 주님의 종이 되겠다고 했던 약속도 서원인가? 내 마음에는 그저 시기와 질투가 전부고, 잘난척하려는 마음만 있었는데, 그렇게 서원해도 효력이 있는 것일까? 셋째, 이렇게 지금까지 변함없이 걸어왔고, 신학교에 가고 목사가 된다면, 왜 하필이면 나를 그런 방식으로 부르시고 사용하시려는 것일까? 이런 고민이었다.
강원도 태백의 예수원에 올라갔다. 대천덕 신부님을 만나서 상담을 하고 싶었다. 며칠을 보내는 중에 아침 묵상 시간에 예수원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이사야 말씀을 읽었다. 이사야 26장 3절 말씀을 내가 읽게 되었는데, 말씀을 읽자마다 대천덕 신부님께서 “이 말씀은 주님께서 형제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라고 하셨다.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이다.”
당시에 예수원에 있던 후배와 묵상 시간을 마치고 함께 산책을 하던 중에, 후배가 나에게, 내가 준비해온 일들을 계속 하는 것, 그렇게 심지를 견고하게 가지고 사는 것이 주님께서 평강을 주시는 일이라고 말씀하신 것 같다고 했다. 나도 충분히 동의했다. 문제는 그렇다면 왜 나를 그런 식으로 부르셨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것에 대한 답은 예수원 기도실에서 기도하는 중에 깨달음으로 주셨다.
남에게 지는 것을 무척 싫어하고 두려워하는 나, 자존심을 지키려는 것이 생활이 기준인 나, 그런 나에게 어떤 큰 은혜와 체험을 주어서, 주님의 종으로 살게 한다면, 얼마나 더 기고만장하고 교만하게 살지 뻔해 보였다. 그래서 주님은 나를 부르실 때, 나의 약점과 못난 점을 그대로 드러내고 부르셨다는 깨달음이다. 그런 가운데도 그나마 있었던 나의 장점, 쉽게 포기하지 않고 꾸준하다는 것을 주님은 보셨나보다. 다른 친구들은 모두 그 약속에서 멀어졌어도 혼자 그 약속을 지키려고 끝까지 갈 수 있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주님은 사람의 강점만 사용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사람의 약점도 사용하신다. 주님의 손에 들어가면 강점도 약점도 주님의 뜻을 이루는 일에 쓰임 받을 수 있다. 그 사실을 알기에 쉽게 교만해져도 안 되고, 쉽게 비굴해질 필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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