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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터닝포인트(6) - 그리스도의 머슴들(전도여행) 본문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6) - 그리스도의 머슴들(전도여행)

Happy Jin 2020. 9. 5.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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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L(Servant of Ubiquitous Lord, 그리스도의 머슴들)에 대한 두 번째 이야기. 

 

앞에서도 SOUL에 대한 이야기가 글로 표현하는 것에 한계와 부담을 느낀다고 했는데, 두 번째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나는 SOUL 모임의 지체들이 합의한 가치와 비전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겪었던 일들과 그 안에서 주님의 일하심을 정리해서 나누고자 한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다.

 

나는 86년 여름부터 94년 겨울까지 전도여행에 참여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방위 복무 중이던 88년 여름과 89년 겨울, 그리고 앞에서 이야기했던 캐나다에 갔던 91년 여름, 세 번은 참석할 수 없었다. 확실하게 몇 년 도인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1990년이 아닐까 싶다. 항상 거금도의 각 마을로 흩어져서 전도여행을 하던 우리는, 각 마을의 중고등학생들을 녹동으로 모이게 해서 연합 수련회를 하는 것에 의견을 모았다. 다른 때보다 많은 준비가 필요했다. 강사로 오실 선교사님도 섭외가 되었다. 한 가지 부담이 되었던 것은, 당시에 학기 중 모임 때마다 말씀을 전했던 선배들이 군 복무 등으로 함께 하지 못했고, 전도여행 때 자주 말씀을 전해 주셨던 선교사님도 부재중이었다. 그래서 당시 월요 모임 때 가끔 내가 말씀을 전했었다. 물론 나는 신학생도 아니었다. 그래도 전도여행 때는 강사로 초대된 선교사님이 계셨기에 연합 수련회는 잘 준비되고 있었다.

 

그런데 전도여행 출발이 며칠 남지 않은 상황에서, 강사로 오실 선교사님께서 오시지 못한다는 연락을 하셨다. 우리는 말씀을 전할 강사가 없어진 상황에 당황했다. 갑자기 다른 분을 찾기도 모시기도 어려웠다. SOUL 모임에서는 내가 연합수련회 말씀을 전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모았고, 나는 기도한 후 하겠다고 결정했다. 나는 설교를 하기로 했지만 막막했다. 중고생들을 대상으로 어떻게 말씀을 전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막막했지만, 설교를, 그것도 연합수련회 저녁집회 설교를 세 번이나 한다는 것이 큰 부담이었다. SOUL 지체들은 수련회를 준비하면서 각 사역마다 팀을 꾸려서 함께 준비를 했는데, 나는 팀도 없이 혼자 설교를 준비해야 하는 것도 큰 부담이었다. 당시 지체들은 나에게 성령님과 팀이 되어 준비하라고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런 말에 감동했던 내가 참 귀엽다. 그러고보니 지금 나의 목회가 그런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3박 4일의 수련회가 시작되었다. 거금도의 각 마을에 사는 아이들이 녹동에 왔다. 나는 세 번의 저녁집회 때 말씀을 전하게 되었다. 하루 종일 다른 사역은 하지 않고 말씀을 전할 준비만 했다. 신학적인 사고체계나 설교에 대한 방법 등이 준비되지 않은 나로서는, 어떤 본문을 정해서 설교한다는 것은 무리였다. 그래서 당시에 열심히 읽었던 제임스 패커의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세 번에 나누어 설교로 정리했다. 그리고 중고등학생 아이들에게 맞추어 말씀을 전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 3일간 세 번의 설교를 90분씩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 생각하면 중고등학생들에게 끔찍하게 길었던 설교가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하지만 “Latte is horse” 보통 수련회 설교는 그 정도는 했었다.

 

마지막 날 저녁 집회가 끝날 때, 각 마을의 목회자들께서 아이들을 만나러 오셨다. 그분들이 나에게 인사를 하시면서 어느 교회에서 사역하고 있느냐, 어느 신학교 출신이냐고 물으셨다. 내가 아직 신학교도 가지 않은 새파랗게 젊은 23살대학생이라는 것을 아시고는 무척 당황하셨다. 아직도 그분들의 표정이 가끔 생각난다.

 

거금도에서만 전도여행 사역을 하던 우리는 참가하는 인원이 많아져서 팀과 사역을 확장할 필요가 있었다. 지역을 약간 넓히자고 계획했다. 그러다 찾게 된 곳 중 하나가 ‘지죽도’라는 아주 작은 섬이었다. 지죽도는 거금도 동쪽에 있는 섬이었다. 당시에 3-40가구 정도가 살고 있었던 작은 섬이고, 녹동에서 버스로 이동해서 아주 작은 나룻배를 타고 줄을 당기면서 건널 수 있었던 섬이었다. 방금 지죽도를 지도로 검색해보니, 여기도 다리가 생겼다. 지죽도에는 교회가 하나 있었다. 글을 쓰다가 지도에서 지죽교회를 보았다. 가슴이 뛴다. 당시 지죽교회에는 전도사님 한 분이 열심히 사역을 하셨다. 마을에 신협을 만드셔서, 마을 사람들의 생활을 돕는 일도 적극적으로 하셨다. 나는 지죽도 팀을 인도하는 팀장으로 가게 되었다. 그 팀에는 당시 과기대 학생이었던 노종문 목사를 비롯해서 편수현, 김태완, 손영일, 정민수 등이 함께 했다.(사진 첨부) 노종문 목사는 과기대를 졸업하고 신학교를 갔다. 들리는 이야기에 따르면 과기대 교수님들께 엄청 욕을 먹었다고. 과학 인재를 키웠더니 목사가 된다고 하니 욕만 먹은 것이 다행이 아닐까 싶다. 종문이와 나는 지죽도에 둘이 답사를 갔었고, 좋은 팀을 이루어 사역을 했다.

 

처음 지죽도에 들어갔을 때 마을을 한 번 돌고는, 주님은 우리 팀에게 같은 마음을 주셨다. “다섯 번만 들어오면 더 들어오지 않아도 되겠다.” 처음 지죽도 전도여행을 마치고 모든 팀이 함께 모여서 보고를 할 때 지죽도에 대해 그렇게 보고했다. 그리고 정말 우리는 다섯 번째 지죽도 땅을 밟으면서,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교회에 다니고 예수를 믿게 된 것을 보았다. 마지막 지죽도 전도여행을 마치고 보고할 때, 이제 우리 팀에게 새로운 땅을 달라고 했었다. 그때의 감격은 잊을 수가 없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꿈을 보여 주셨고, 그 꿈을 말하게 하셨고, 그 꿈과 말을 이루게 하셨다.

 

지죽도의 아이들은 정말 사랑스러웠다. 우리에게 산을 올라가자고 하고는 바다가 바로 눈앞에 있는 절벽의 길로 데리고 갔다. 그 길밖에 산 위로 올라가는 길이 없다고 해서, 목숨을 걸고 산을 올라갔다. 그런데 내려올 때는 평평한 길로 내려오면서 우리에게 장난을 쳤다. 성경학교를 하면서 물 위를 걸었던 예수님과 베드로의 이야기를 말씀으로 나누었더니, 밤에 바닷가에 우리와 함께 나가서 어두운 바다에 우리를 밀어 넣으면서 믿음을 가지고 걸어보라고 하기도 했던 아이들. 지금 그 아이들도 40대의 중년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어디서 무엇을 하면서 지내고 있을지 무척 궁금하다.

 

SOUL 모임은 나에게 하나님의 생각이 사람의 생각과 다르다는 것을 명확하게 보여 주시는 곳이었다. 우리가 최선을 다해 준비했어도, 하나님은 갈아엎기도 하시고, 완전히 새로운 일을 이루기도 하셨다. 나는 한참을 설명하며 복음을 전해도 받아들이지 않던 분이, 다른 지체가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라고 한 마디 전했을 때 눈물을 흘리면서 예수님을 영접했던 일들도 보았었다. 

 

나는 지금도 하나님의 일을 연약한 사람인 나의 잣대로 계산하는 일을 하지 않는다. 그저 길을 열어주시면 전진하고, 닫으시면 멈춰 서고, 조급하지 않게, 그러나 최선과 열정과 성심으로 주님의 일에 참여하려는 마음이 있다. SOUL 모임에 함께 했던 20대의 시간들이 그렇게 주님을 따르는 길을 훈련하게 해 주셨던 것 같다. 지금도 놀라울 정도로 그렇게 주님을 바라보면서 전진하고 성숙해가는 지체들을 보면, 역시 우리 하나님은 살아 계시고 역사하고 계신다는 생각이 더욱 뚜렷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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