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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터닝포인트(20) - 나는 밖으로 나가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본문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20) - 나는 밖으로 나가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Happy Jin 2020. 10. 9. 0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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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다. 물론 대학생 시절에 전도 여행 등으로 열심히 돌아다닌 경우는 있었다. 그런데 돌아다니고 싶어서 다닌 것이 아니고 해야 할 일이라 했다. 나는 잠자리가 바뀌면 잠을 못 잔다. 베개만 바뀌어도 잠이 오지 않는다. 나이가 들면서 더 그런 경우가 많다. 그래서 차로 여행을 할 때는 아내가 꼭 내 베개를 챙긴다. 나는 집 안에 며칠을 가만히 있으라고 해도 아무 불만이 없는 사람이다. COVID-19 시대를 보내면서 “Stay Home”을 나는 크게 불편해하지 않는다. 평소 일상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는 말이다. 나는 잠깐씩 현관문 밖에서 바람을 쐬고 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교회에서의 일도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교회 사역을 하면서도 심방과 수련회 외에는 밖으로 다녀 본 적이 별로 없다. 필요한 심방 외에는 사무실과 서재에 있는 것을 좋아하고, 동선을 최소화하는 것이 좋다. 가만히 앉아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TV로 스포츠나 예능이나 드라마를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지낼 수 있는 사람이다. 스포츠를 좋아하지만 보는 것을 더 좋아한다.

 

영동중앙교회에서 사역할 때 단기선교에 참가하게 되었다. 필리핀에 한 번, 우즈베키스탄에 한 번 갔었다. 필리핀은 더웠고, 우즈베키스탄은 추웠다. 필리핀에서 지프니를 타고 이동을 할 때, 지프니 지붕 위에 올라타고 산길로 이동한 적이 있다. 그때 쓰고 있던 모자가 바람에 날려서 골짜기로 떨어지는 바람에, 모자 없이 태양 빛을 그대로 큰 얼굴로 받았었다. 그리고 다음 날 얼굴에 화상을 입은 것을 알았다. 단기선교팀이 화상을 가라앉혀 주시느라 고생을 하셨던 기억이 있다. 우즈베키스탄에서 겪었던 추위는 정말 힘들었다. 사역을 마치고 토요일 오후에 서울로 돌아와서, 토요일 저녁 대학부 예배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 누웠다가 열이 40도 이상 올라가며 아파서 주일 예배를 못 나간 적이 있다. 아내가 교회에 전화를 걸어서 “이진영 강도사가 아파서 오늘 교회를 못 가요”라고 했는데, 그때가 교회에 다니기 시작하고 두 번째로 주일에 교회를 못 간 날이었다. 처음으로 주일 예배에 가지 못한 때는, 중학교 3학년 때였는데, 친구들과 지리산에 갔다가 비가 많이 와서 하산을 못 하고 절에 있었다.

 

단기선교 또는 선교사역이라고 하면, 나는 힘든 기억이 먼저 떠올랐다. 그래서 선교 사역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나보다 더 적임자가 있을 것이라고 하면서 나는 나서지 않으려고 했다. LA의 교회에서는 선교 사역이 활발했는데도 나는 한 번도 선교 사역에 참여하지 않았다. 물론 영주권 문제가 걸려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뉴저지에서는 선임 목사로 교회의 행정 업무를 주로 담당했다는 이유로, 또 동역자들이 선교지에 가고 싶은 마음도 많았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단기선교 사역에 참여하는 일이 없었다. 그러다 내가 밖으로 나갈 일들이 몇 차례 생겼다. 어느 날 담임목사님이 나에게 여름에 있는 유럽 코스타에 강사로 참여할 기회가 생겼다고 가보라고 하셨다. 그리고 아이티의 이동렬 선교사님을 만나게 되어 아이티에 혼자 갔었고, 페루 아마존에서 원주민들의 결혼식에 참가해야 할 일이 생겨서 아마존을 다녀왔다. 늘 교회 안에서 목회만 하던 내가 외부에 강사로 나가거나 선교지에 가는 일은 큰 부담이 되었지만 그래도 필요한 사역이고 현장을 보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에 참여했다.

 

2014년 여름 유럽 코스타를 위해 프라하에 갔다. 월요일 아침에 프라하에 도착해서 하루는 민박하고 프라하 관광을 할 계획을 세웠다. 프라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기에 민박집에서 추천하는 가이드를 소개받았다. 아침에 민박집에 도착하자마자 가이드를 만났는데, 가이드가 어떻게 혼자 여행을 오게 되었냐고 물었다. 코스타 강사로 왔다고 하니 갑자기 가이드가 긴장하면서, 자신은 일본에 있을 때 코스타에서 큰 은혜를 받았던 경험이 있고, 그래서 코스타 강사들에 대해 늘 존경해왔는데, 온종일 코스타 강사와 동행을 한다는 것이 큰 영광이라고 하면서, 목사님께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도록 관광 코스를 변경하겠다고 했다. 오전 11시가 조금 지나 시작한 프라하 관광은, 오후 9시가 되어서야 마쳤다. 프라하의 역사에 관해 공부했고, 구교와 신교와의 갈등에 대해서, 그리고 ‘얀 후스’에 대한 이야기와 유적들을 살펴보았다. 나치의 공격 때 빨리 항복을 해서 수많은 유적이 보존될 수 있었기에 다행인지 잘 보존된 아름다운 유적을 볼 수 있었다. 

 

프라하에 가기 전에 사람들은 나에게 체코에 가면 맥주 맛을 봐야 한다고 했다. 아무리 목사라고 술을 마시지 않더라도 체코에 가면 꼭 맥주를 맛보라는 말을 많이 들었기에, 가이드와 함께 저녁 식사를 하면서 유명한 맥주 추천을 받을 것을 내심 기대했다. 그런데 가이드가 “저는 맥주를 한잔하려고 하는데, 목사님은 맥주 안 드시죠?”라고 물었다. “목사여도 맥주 마시려고요!”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오려 했는데, “네. 안 마셔요”라고 대답했다. 왜 그랬는지는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삶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바울 서신을 아는 사람들이라면 이해할 것이다. 가이드를 하는 형제는 지금도 열심히 사는 것 같다. 후에 가족이 함께 유럽을 가면 다시 만나서 가이드를 받고 싶다.

 

코스타를 준비할 때, 본부에서 나에게 어떤 특강을 할 수 있는지 물어왔다. 나는 말씀묵상에 대한 강의를 하려고 했는데, 당시 코스타에 오셨던 강사 중 상당수가 말씀묵상에 대한 강의를 하신다고 해서, 나는 ‘중보기도’로 강의 주제를 바꾸어 준비했다. 코스타 기간에 중보기도 강의를 두 번 했고, 아침 예배 말씀을 한 번 전했고, 청소년들에게 두 번의 말씀을 전했다. 그리고 코스타가 늘 그렇듯이 청년들과 상담하는 시간을 가졌다. 아침 예배 말씀을 전한 후에 한국에 계시는 어떤 목사님이, 한국에 오면 자신이 섬기는 교회에 와서 설교를 하면 좋겠다고 하셨다. 인사치레로 하신 말씀일 텐데 나는 “다음 주에 한국에 가는데 연락을 드리겠습니다”라고 말씀드렸고, 결국 한국에 가서 그 교회에 가서 주일 저녁예배 설교를 하게 되었다. 중보기도 강의에 들어왔던 젊은 부부는 강의가 마치고 여러 질문과 나눔을 가졌었고, 금요일 오전에 코스타 집회가 모두 끝나고, 금요일 오후에 프라하 시내를 함께 다니며 교제하게 되었다. 좋은 만남들이 많았다. 유럽의 중앙이라고 할 수 있는 프라하에 유명 강사(?)들이 모이는 집회라, 청년들만 모인 것이 아니라 유럽 각지의 교회들에서도 많이 참가하셨다. 무엇보다 유럽에서 사역하시는 목사님들과의 교제가 참 좋았다. 프라하에 완전히 마음을 빼앗긴 나는 다음 해 2015년에 아내와 다시 프라하를 방문했다.

 

뉴저지에서 아이티의 이동렬 선교사님을 만나게 되었다. GKYM 사역을 하시며 아이티에서 선교사로 계신 이동렬 선교사님을 뵙고, 사실 GKYM에 대한 안내를 받을 계획이었다. 그런데 식사와 교제만 했다. 아이티에 관한 이야기를 더 많이 들었다. 그리고 얼마 후에 아이티에 한 번 와서 신학생들에게 강의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신학교 강의를 위해 오는 것이라고 방문 교수라는 타이틀도 만들어 주셨다. 교회에 아이티에 다녀올 수 있도록 허락을 받고 아이티 땅을 밟았다. 신학생들에게 온종일 강의를 했고, 저녁에는 센터에서 사역 중인 청년들과 성경을 공부했다. 그리고 선교사님과 친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일주일 동안 거의 갇혀서 지냈지만, 마음에 큰 평안을 누렸다. 잠자리가 바뀌면 잠을 잘 자지 못하는 나인데, 밤새도록 우는 닭울음소리 때문에 사흘 동안은 고통을 받았다. 그런데 나흘째 되는 날에는 닭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닭울음소리가 사람을 깨우기도 하지만, 자주 듣다 보면 익숙해지는 것이란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에는 닭요리를 먹었다. 며칠 동안 밤새 울던 닭인지는 모른다.

 

에임스반석교회 사역을 시작하면서 CRC 교단 가입 절차를 밟을 때, 아이티 신학교에서 교수로서 강의한 것이 큰 덕을 보았다. 노회의 목사님들이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사람에게 성경의 지식에 관해 물을 필요는 없다고 해서, 영어로 진행되는 시험이 비교적 빨리 끝났었다. 나는 에임스반석교회의 교우들에게 아이티 단기선교에 함께 하자고 제안했다. 교우들은 흔쾌하게 함께 하겠다고 했다. 교우들과 지금까지 두 번의 단기선교를 다녀올 수 있었다. 2019년과 2020년에는 아이티의 정국 불안정과 코로나로 인해 가지 못하고 있다. 에임스반석교회는 유학생들이 모이는 교회이고, 지역에 대한 문제도 있어서 한 번도 단기선교를 생각하지 못했던 교회였다. 그런데 아이티에 가게 되었고, 이동렬 선교사님을 협력선교사로 모실 수 있게 되었고, 매일 아이티를 위해 기도하는 복을 누리고 있다.

 

오래전에 멘토링을 해 주시던 선교사님이, 담임 목회를 하려면 선교에 대한 마음과 감각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겁이 많고 멀리 여행하기를 싫어하는 나였는데, 주님은 나를 움직이게 하셨다. 선교의 기본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하셨다. 나는 선교가 특별한 일이 아니라 친구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과 만나서 이야기를 하고, 가지고 있는 마음과 생각을 나누며 가까워지는 것, 그렇게 친구가 되는 것이 선교의 시작이 되고 완성이라고 생각한다. 그 과정에서 할 수 있는 일, 해야 할 일들을 하면 되는 것 아닐까? 특별히 현지에서 사역하시는 분들을 만나고 위로하고 격려하는 것, 그조차 크고 특별한 일이 아니라, 정말 친구처럼 이야기하고 마음을 나누는 것이면 되지 않을까? 그리고 필요한 것을 함께 채워갈 수 있다면 그것이 선교가 아닐까 생각한다. 무엇보다 마음을 열고 용기를 내어 움직이면서 시작하면, 하나님께서 열어 주시는 길을 걸을 수 있고, 보여 주시는 것을 볼 수 있다.

 

21편이 이어집니다.

 

코스타 설교 중
아이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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