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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터닝포인트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10) - Yes

Happy Jin 2020. 9. 5.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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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선교교회에서 사역을 했던 2003년 3월부터 2009년 4월까지, 나는 정말 많은 사역을 할 수 있었다. 강준민 목사님은 나에게 여러 기회를 주셨고, 나는 목사님의 말씀에 한 번도 “No”라고 대답한 적이 없었다. 한국어 대학부 사역으로 교회 사역을 시작한 후, 새가족, 남성 큐티, 중보기도, 구도자 예배, 공동체, 영커플, 신문 제작까지, 정말 많은 사역을 했다.

 

어느 월요일 아침이었다. 월요일이니까 새벽예배와 기도를 마치면 빨리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일상적이었는데, 기도하는 중에 강단에서 기도하시는 강 목사님을 보게 되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뭔가 나에게 하실 말씀이 있는 것으로 생각이 들었다. 나는 목양실로 통하는 복도의 의자에 앉아서 목사님을 기다렸다. 목사님은 지나시는 중에 나를 보시고 내 옆에 앉으셔서, “중보기도 사역을 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으셨다. 내 대답은 망설임 없는 “Yes”였다. 그리고 “어떻게 준비하면 될까요?” 여쭈었다. 목사님은, 우선 기도에 대한 책을 읽어 보라고 하셨다. 그래서 그날로 서점에 가서 기도에 대한 책을 수십 권 샀다. 그 후 기도를 주제로 하는 책만 거의 백여 권 사 모은 것으로 기억한다. 기도를 책으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책을 읽으면서 알았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기도에 대해 안내를 할 수 있는 틀이 그때 세워졌다. 그때 중보기도에 대해 배우며 사역했던 경험과 지식이 뉴저지에서도 사역으로 이어졌고, 2014년에는 유럽 코스타에서 중보기도에 대한 강의를 할 수 있었던 기회가 주어지기도 했었다.

 

강 목사님은 사역자들과 사역에 대한 방향은 함께 논의하시지만, 사역 담당자가 정해지면 구체적이고 세세한 지시는 하지 않고 사역자에게 모든 것을 맡기신다. 물론 답답하시면 불러서 코치는 하신다. 

 

당시 교회에는 상당히 많은 사람이 계속 등록을 했다. 청년예배까지 네 번의 예배가 있었던 주일예배를 하나 더 만들어야 할 필요가 생겼다. 새로운 해를 준비하고 계획하는 시간에 토요일에 예배를 만들면 어떻겠냐는 아이디어가 나왔고, 그 예배를 구도자들을 위한 예배로 하면 좋겠다는 의견이 모였다. 그리고 내가 담당 사역자가 되었다.

 

나는 신학대학원 졸업 후 강도사 고시를 볼 때, “열린 예배(또는 구도자 예배)를 비판하라”가 논문 주제였기에, 아주 신랄하게 비판하는 논문을 썼던 경험이 있었다. 사실 당시에는 왜 그런 논문을 써야 하는지 몰랐다. 그저 시험에 통과하기 위해 썼다. 그런데 그 논문을 썼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이때를 위함이었다고 생각이 들었다. 토요일에 예배를 드리는 것을 비롯한, 구도자들이 예배자일 수 있는지에 대해서, 예배의 여러 부분을 연구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예배의 진행을 위한 준비를 했다. 예배를 준비하기 위한 스태프들이 구성되고, 우리는 시카고 윌로우크릭 교회를 찾아갔다. 윌로우크릭 교회에서 어떤 마음가짐과 준비로 Seeker’s Sensitive Service를 하고 있는지 안내를 받았다. 그 교회 스태프가 처음으로 했던 질문이 인상적이었다. “구도자 예배에 대한 필요가 당신들의 교회가 있는 지역에 있는가?” 예배가 단지 교회의 규모를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예배자들의 필요를 채워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철저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구도자들에게 소개하는 예배, 말씀과 기도와 찬양을 비롯한 모든 프로그램이 구도자들의 눈높이에 맞출 수 있게 하는 예배로 준비되었다. 

 

구도자 예배를 준비하면서 가장 먼저 중보기도팀을 구성했다. 15명 정도의 중보기도팀이 예배 시작 3개월 전부터 매주 토요일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성가대도 전문 합창단처럼 오디션으로 30명 정도를 모집했다. 찬양팀은 외인구단처럼 LA지역에서 탁월한 뮤지션들이 모여서 구성되었다. 예배는 매주 주제에 따라 완전히 다른 구성을 했다. 찬양팀은 때로는 찬양을 한 곡만 하기도 했다. 예배를 합창단의 찬양으로 시작할 때도 있었다. 드라마로 예배를 시작할 때도 있었고, 코미디쇼를 한 적도 있었다. 가수의 공연이 있기도 했고, 오케스트라, 브라스 밴드, 그리고 그림을 그리고 리듬체조까지, 여러 예술가가 구도자예배에 출연했다.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주제로 토크쇼를 하면서 말씀을 전하기도 했다. 구도자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단어들이 쓰이는 직분자들의 예배기도는 생략했다. 대신 예배 때마다 내가 그 예배의 주제에 맞는 ‘기도시’를 썼다. 그리고 작곡하는 형제가 배경음악을 만들었고, 영상과 함께 제작해서 ‘기도시’를 상영했다. 2분 정도의 시간 사람들은 눈과 마음으로 기도할 수 있었다. 조명도 영상도 음악도 예배의 모든 부분을 전통이 아닌 사람들이 편안하게 마음을 기댈 수 있는 시간과 장소로 만들려고 노력했다. 하나님께서 예배에 찾아오는 사람들의 마음을 만져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예배가 구성되었고 진행되었다.

 

어느 날 구도자 예배에 참석하셨던 한 분이, 예배가 마치고 나가시면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자신은 미국과 한국의 큰 교회들을 많이 다녀보았는데, 잘나간다는 미국 교회의 트렌드를 한국 교회가 수입하고, 그중 대표적으로 온누리교회가 미국 교회의 트렌드를 잘 받아들여서 새로운 한국 교회의 트렌드를 만들면, 미국 이민교회는 한참 시간이 흐른 후에 한국 교회의 프로그램들을 수입해서 적용한다고 생각했는데, 동양선교교회의 구도자 예배는, 온누리교회도 해보지 않은, 미국 교회들도 거의 시도하지 않은 일들을 해낸 무척 앞서가는 좋은 예배인 것 같다고 하셨다. 나는 구도자 예배 때문에 미주 한인 신문, 라디오방송, TV 방송 등에 계속 출연해서 구도자 예배에 대해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구도자 예배 때, 말씀이 끝나면 예수님과 복음을 전하며 영접 초청(?)을 한 적도 있었다. 어떤 경우에는 150명 이상이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겠다고 일어나서 함께 기도했고, 때로는 한 명이 일어나서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겠다고 했던 적도 있었다. 나를 비롯한 구도자 예배의 스태프들은 그 한 분이 예수님을 믿겠다고 했던 예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었다. 우리가 어떤 프로그램으로 예배를 진행했는지는 기억하려 하지 않았지만, 예수님을 믿겠다고 한 분들에 대해서 마음을 집중하려고 했다.

 

구도자 예배는 100번의 예배, 거의 2년을 채우고 막을 내렸다. 사실 예배를 준비하는 과정이 너무 힘들었다. 매번 같은 스타일의 예배가 아닌 완전히 다른 예배를 준비했기에, 한 번의 예배를 위해 몇 주에 걸쳐서 디자인하고 준비하고 실행했다. 과연 그런 예배를 다시 또 할 수 있을까 싶다. 구도자 예배를 마치기로 했을 때, 강준민 목사님께서 내게 물으셨다. “아쉽지 않아? 어떤 사람보다 이 목사가 제일 아쉬울 것 같은데?” 나는 “하나도 아쉽지 않아요.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힘보다 더한 일을 했어요. 조금의 후회도 조금의 아쉬움도 없네요”라고 말씀드렸다.

 

나는 아직도 “No”라고 말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하지만 나를 지금까지 이끌어 온 좋은 에너지는 “No”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Yes”에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50대 중반이 되면서, 힘든 것은 못 하겠다고 생각하거나 말하는 때가 종종 생기기도 한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시도하면, 자신 속에 있는 더 많은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터닝포인트는 “No”가 아닌, “Yes”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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