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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터닝포인트(11) - 공감도 배워야 본문
LA에서 새가족 사역을 할 때였다. 2005년 초로 기억한다. 화요일 저녁에 새가족을 위한 공부가 마치고 밤늦은 시간이었는데, 교회 사무실에서 나를 찾았다. 전화를 받아보라는 것이었다. 동양선교교회 교인은 아닌데 목사의 심방을 급하게 받고 싶지만 자기가 다니는 교회의 목사님은 연락이 안 되고, 큰 교회에는 누군가 있지 않을까 해서 전화를 하셨다고 했다. 새가족 스태프 몇 분과 같이 심방을 갔다.
집안의 분위기는 무척 어두웠다.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있었던 집이란 생각이 들었다. 어떤 일 때문에 목사의 심방을 요청하셨냐고 여쭈었다. 대답은 충격적이었다. “오늘 저희 딸이 자살했어요. 오랫동안 우울증을 앓던 아이인데, 그러면서도 교회는 열심히 다녔는데, 오늘 아침에 칼로 목을 찌르고 3층 집에서 떨어졌어요.” 그 말을 듣는데 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다음 이야기였다. “목사님, 제 딸이 교회는 열심히 다니던 아이였는데, 자살했으니 지옥에 갔을까요? 저는 그 아이가 지옥에 갔을까 봐 너무 무서워요. 그래서 목사님이 심방을 해 주시고 말씀을 해 주셨으면 해서 오시라고 했어요.”
나는 순간 멍해졌다. 뭐라고 답을 드려야 하지? 신학교에서는 한 번도 이 문제에 대해 들은 적이 없다. 내가 자라온 교회에서도 그때까지의 신앙생활 중에서도 학교에서도, “자살하면 지옥 간다”라고만 들었지, 사람이 왜 자살을 하는지, 자살한 가족들에게는 무엇이라고 말해야 하는지, 자살 충동을 가진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그와 연관된 그 무엇도 배우거나 들었던 적이 없었다.
나는 아주 지극히 상식에서 나온 대답을 드리고 그 집을 나왔다. “사람의 생명과 구원에 대해서는 누구도 단정할 수 없어요. 하나님을 사랑했던 딸이고, 하나님이 사랑하셨던 딸이면, 하나님께서 포기하지 않으셨을 것이라 믿어요.”
그 후 나는 나의 신앙과 목회에 대해서 새롭게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마침 그즈음에 어느 유명 크리스천 연예인의 자살이 사회적 이슈가 되었고, 자살에 대한 신학적 토론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꼼꼼하게 그 내용을 읽으며 배웠다. 그러면서 내가 그동안 배우지 못했던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신학적 지식이 문제가 아니라 공감에 대한 부분이었다. 사람을 알고 사람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 너무나 부족했다는 것이다. 어떤 일이 발생하면 어떻게든 내가 가진 기준으로 평가하고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원칙만 보호하고 세우려는 것이 목사들이 가진 태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어떻게 죽었으면 그 가족이 겪는 슬픔과 아픔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고, 죽은 이가 천국에 갔는지 지옥에 갔는지를 판단하려는 것이 앞서는 것이 목사들이 모습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목사들끼리 모였을 때 나누는 이야기를 들을 때도 그렇지만, 심지어 교인들도 그렇게 물어보는 경우가 많다.
나는 그런 질문을 받으면 이제는 잘 모르겠다고 대답한다. 그리고 반문한다. “목사는 사람의 구원을 판단하는 역할을 위해 세워진 것인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의 구원은 하나님께서 정하시는 것이지, 사람이 판단할 수 없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 목사로서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갖도록 안내하는 것이고 돕는 것이지, 그것을 강요할 수도 없고 억지로 믿었다고 결정해 줄 수도 없다. 그저 도울 뿐이고, 그 믿음의 길에 동행하는 것이 최선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 일이 있고 난 뒤 얼마 되지 않아서, 교회로 걸려온 전화 상담이 나에게 연결되었다. “제 어머니가 얼마 전에 돌아가셨어요. 그런데 돌아가시기 전에 제가 어머니와 크게 다투었거든요. 어머니와 제가 화해하지 못한 채 돌아가시게 되었는데, 나중에 천국에 가면 어머니와 제가 서로에 대한 서운한 마음을 그대로 가지고 만나는 것은 아닐지 걱정이 되어서요. 목사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나는 이렇게 답했다. “제가 아직 천국에 안 가봐서 모르겠는데요. 더구나 어머니와 자매님이 경험할 미래의 일을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 그렇게 말씀을 드렸더니 그분은 의외의 대답을 하셨다. “목사님, 몇 분의 목사님에게 같은 질문을 드렸는데, 모르겠다고 대답한 분은 목사님이 처음이에요. 모른다고 말씀해 주셔서 감사해요. 나중에 목사님 개척하시거나 담임목사 되시면 목사님 계신 교회로 나갈게요.” (부목사는 목사가 아니라는 말이 맞는 것 같다. 감동이 되었으면 그냥 오셔야지, 부목사는 교인을 교회로 인도하기도 어렵다. 지금은 내가 담임목사인데, 아이오와로 오시라고 하면 오시려나?) 아무튼 그 대답을 듣고 나는 혹시 내가 무시당한 것은 아닐까 싶어서, “그래도 제가 기대하는 천국은 어머니와 따님이 과거의 원망은 잊고 평안 가운데 함께 할 수 있는 곳이에요”라고 말씀드렸다.
나는 무엇에든 단언하는 사람들이 부담스러워졌다. 얼마나 자신이 가진 지식과 생각에 확신이 있길래 어떤 상황에 대해서 또 사람에 대해서 단언하는 것일까? 지금도 그런 사람들은 부담이 된다. 나도 그럴 가능성이 많은 사람이기는 하지만, 이제는 생각과 태도를 많이 바꾸었다. 나도 생각이 있고 논리도 있고 확신도 있다. 논리와 확신 없이 어떻게 설교를 하겠는가? 하지만 분명히 나와는 다른 생각들도 있고 다른 확신도 있을 것이다. 사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무척 불편하다. 그래도 내가 약하고 모자란 존재이기에 그럴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그들 나름의 삶의 길이 있지 않겠는가? 내가 꼭 해야 하는 일은 공감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고, 또 다른 관점에서도 생각해 보는 것이다. (물론 사람에 대한 공감은커녕 조금의 생각도 없고, 오로지 자기 욕심을 채우려고 소리치는 존재에 대해서 공감할 마음은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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