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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터닝포인트(23) - 서쪽으로 가자! 본문
2016년 5월에 시온이가 기숙사를 나와서 아파트를 구해야 했다. 마침 원룸에서 지내고 싶다고 해서 학교 근처 아파트를 계약했다. 그리고 우리는 뉴저지 교회 근처에 살던 집의 계약을 6월 말로 끝내야 했다. 어디로 갈 수 있을지 모르는 상태에서 계약을 계속 유지할 수는 없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살던 집의 짐의 반 이상을 집 근처 스토리지에 넣어 놓고, 나머지를 가지고 시온이가 살 원룸 아파트로 가기로 했다. 미국에서 13년을 살았던 짐, 아이가 초등학교부터 대학 때까지 자랐던 집이라 짐이 많았지만, 이사를 할 때마다 가장 고민이 되는 건 내가 가지고 있던 책이었다. 마침 책들을 넣기 딱 좋은 상자를 많이 구하게 되었다. 백수십 상자의 책을 포장하고 스토리지에 넣었다. 하루에 몇 번씩 왕복하면서 거의 일주일 동안 짐을 옮겼다. 잠시 거할 처소는 마련했다고 생각을 했지만, 과연 어느 정도 살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이사를 준비하는 것은 처음이었고 힘든 일이었다.
6월 1일에 보게 된 ‘에임스반석교회’의 청빙 광고는 앞의 글에서도 말했던 것처럼, 다른 교회들과 사뭇 달랐다. 이민 교회의 대부분은 한국어와 영어를 잘하는 담임목사를 찾는데, 주요 언어가 한국어라는 것이 가장 특별했다. 그리고 청년들을 위해 사역하는 교회라는 것도 신선했다. 아내는 한 번 더 지원해보라고 했고, 이젠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지원서를 준비했다. 내가 생각했던 청년 사역, 그리고 교회가 청년 사역을 위해 준비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했다.
그동안 내가 교회에서 생각해왔던 청년 사역과 청년 사역을 위해서 교회가 갖추어야 할 모습을 다섯 가지로 정리해 보았다. 첫째, 교회가 안정감이 있어야 하고 건강해야 한다. 둘째, 교회의 기존 가정들이 계속 믿음의 성장을 보일 수 있어야 한다. 셋째, 교회가 세상을 향한 비전과 섬김을 위한 헌신의 구체적인 실행이 있어야 한다. 넷째, 청년들이 배움과 훈련에 기꺼이 참여할 이유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 다섯째, 청년들 스스로가 서로와 교회를 섬기는 일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다섯 가지를 적용하기 위해 무엇을 할지 생각했고 계획을 세워보았다. 물론 교회가 나의 계획과 비전에 공감할 수 있어야 하겠지만 충분히 가치를 가진 비전이라고 생각했다.
며칠 후 지원서를 보냈다. 지원서를 보내고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계속 이사 준비를 했다. 그리고 오하이오 클리블랜드에 있는 시온이 학교 근처의 아파트로 옮길 짐을 컨테이너에 실어 보낸 날, 세 식구가 빈집의 거실 바닥에 침낭을 깔고 잘 준비를 했다. 잠이 들려고 하는 순간 이메일이 왔다. 에임스반석교회의 청빙위원회에서 보낸 이메일이었다. 주일 오후에 영상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했다. 인터뷰에 응하겠다고 이메일을 보내고, 다음 날 6월 30일 목요일 아침에 일찍 클리블랜드를 향해 출발했다. 뉴저지에서 클리블랜드로 가는 길은 서쪽이다. 어디에 정착하게 될지는 모르지만, 우선 서쪽으로 출발했다. 언젠가 남은 짐을 찾으러 뉴저지에 다시 오기는 하겠지만, 그것도 기약이 없었다. 2009년 7월 말에 뉴저지에 도착해서 2016년 6월 말에 뉴저지를 떠났으니, 만 7년을 살았다.
클리블랜드의 아파트에 도착해서 먼저 출발한 짐을 받고 짐을 방으로 옮기는데, 온종일 25,000보를 걸었다. 아파트에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오르내린 계단은 70층 높이라는 기록이 나왔다. 그런데 마지막에 LA에서 사서 팔지 못하고 가지고 다니던 냉장고가 아파트 현관을 통과하지 못했다. 너무 오래된 아파트라 현관이 너무 좁았다. 문짝을 떼어도 안 되는 것을 알고 오랫동안 사용한 냉장고라 근처 구세군에 기부를 하기로 하고 아파트 문 앞에 두었다. 그날 밤 누군가 냉장고를 가져갔다. 아파트에 인터넷 설치가 되지 않았다. 토요일에는 인터넷 설치가 되어야 주일에 영상 인터뷰를 할 수 있을 텐데, 회사에서 보내주는 기기를 받지 못했다. 결국 주일 오후에 있을 인터뷰는 근처 스타벅스를 이용하는 것이 가장 좋겠다고 생각했다.
7월 3일 주일 아침에 우리 가족은 시온이가 다니던 클리블랜드의 Parkside Church에서 예배를 드리기로 했다. 담임목사님이신 Alistair Begg 목사님이 안 계시고 부목사님이 설교하셨다. 예배가 참 좋았다. 말씀도 좋았고, 마지막 찬송도 좋았다. “굳건한 반석이시니 그 위에 내가 서리라. 그 위에 내가 서리라.” 물론 영어 가사로 찬송했다.
오후에 인터뷰 약속 시각이 되어 나는 스타벅스로 갔다. 영상 인터뷰를 시작할 때 두 분이 나왔다. 다른 분들도 계신다고는 했는데 얼굴을 볼 수는 없었다. 인터뷰가 시작할 때 청빙위원이었던 권사님께서 “목사님, 우리 교회는 유학생을 섬기는 작은 교회라 목사님께 드릴 수 있는 사례가 많지 않아요.”라고 하시면서 사례 액수를 말씀해 주셨다. 청빙하는 교회에서 사례를 먼저 제시한 경우도 처음이었다. 액수를 듣는 순간 속으로 생각했다. “아내가 가지 않겠다고 하겠구나.” 우리가 뉴저지에서 사역할 때 받은 사례보다 절반 정도 되었다. 과연 살 수 있을까? 아이오와가 물가는 뉴저지보다 싸고, 생활비도 적게 들지만, 아이를 대학교육하면서 살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였다. 인터뷰 분위기는 상당히 좋았다. 마음이 편안했다. 그동안 경험했던 인터뷰에 비해서는 마음에 자유로움도 있었고, 청빙위원들의 자세도 겸손했고 열려 있었다. 동성애에 대한 질문도 없었다.
인터뷰가 끝나고 아내에게 말했다. “교회는 참 좋은 것 같고 편안한데, 사례가 우리 생활에 충분하지 않을 것 같아. 어쩌지?” 그런데 아내가 의외의 대답을 했다. “하나님께서 알아서 하시겠지. 보내신다고 하면 가야지.” 그리고 아내는 그날 주일 예배 때 들었던 말씀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주일예배 때 들었던 말씀의 본문은 누가복음 12장이었다. 말씀을 듣는 도중에 아내는 누가복음 12장 전체 문맥을 살펴보았고, 그 말씀 중에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주님의 말씀에 주목했다.
"예수께서 [자기의]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까' 하고 걱정하지 말고, 몸을 보호하려고 '무엇을 입을까' 하고 걱정하지 말아라. 목숨은 음식보다 더 소중하고, 몸은 옷보다 더 소중하다. 까마귀를 생각해 보아라. 까마귀는 씨를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또 그들에게는 곳간이나 창고도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먹여주신다. 너희는 새보다 훨씬 더 귀하지 않으냐? 너희 가운데서 누가 걱정한다고 해서, 제 수명을 한 순간인들 늘일 수 있느냐? 너희가 지극히 작은 일도 못하면서, 어찌하여 다른 일들을 걱정하느냐? 백합꽃이 어떻게 자라는지를 생각해 보아라. 수고도 하지 아니하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자기의 온갖 영화로 차려 입은 솔로몬도 이 꽃 하나만큼 차려 입지 못하였다. 믿음이 적은 사람들아, 오늘 들에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들어갈 풀도 하나님께서 그와 같이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야 더 잘 입히지 않으시겠느냐? 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고 찾지 말고, 염려하지 말아라. 이런 것은 다 이방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이다.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런 것이 너희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아신다. 그러므로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여라. 그리하면 이런 것들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실 것이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적은 무리여, 너희 아버지께서 그의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신다. 너희 소유를 팔아서, 자선을 베풀어라.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낡아지지 않는 주머니를 만들고, 하늘에다가 없어지지 않는 재물을 쌓아 두어라. 거기에는 도둑이나 좀의 피해가 없다. 너희의 재물이 있는 곳에 너희의 마음도 있을 것이다."(누가복음 12: 22-34, 새번역)
아내는, 이 말씀을 마음에 주신 주님은 분명히 지금 우리에게 약속하시며 보여 주고자 하시는 것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먹고살 것은 주님께서 알아서 해 주실 것이니 주님의 뜻을 기다려 보자고 했다. 나도 그 말에 동의하고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날 밤에 이메일이 왔다. 에임스에 와서 주일예배 말씀을 전해달라는 요청이었다. 인터뷰를 한 날이 7월 3일이었고, 설교 요청을 한 날은 7월 17일이었다. 그런데 우리 가족은 시온이가 참여할 뮤직 페스티벌 때문에 Maine주까지 가기로 계획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7월 10일이나, 아니면 24일에 설교를 할 수 있다고 연락을 했다. 그리고 비행기 표를 알아보니 600불이 훨씬 넘었고 직항도 없었다. 교회가 가난하다고 했는데 600불이 넘는 비행기표를 사서 보내기는 어렵겠다고 생각했다. 24일에 설교를 하라고 하면 차를 타고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곧 연락이 왔다. 7월 10일 주일에 설교를 요청하면서 비행기표를 보내왔다.
일주일 동안 설교를 준비하고 7월 9일 토요일에 비행기를 탔다. 시카고를 경유해서 미국에서 타본 비행기 중 가장 작은 비행기를 타고 아이오와 Des Moines에 도착했다. 작고 아담한 공항이지만 인터내셔널 공항이라고 해서 미소가 지어졌다. 교회에서 나오신 집사님을 만나서 에임스로 이동했다. 호텔에 들어가기 전에 집사님은 에임스를 돌아보자고 하셨다. 거의 한 시간 이상을 아이오와 주립대학(Iowa State University)과 동네를 돌아보았는데, 내 느낌으로는 뱅뱅 돌아도 30분이면 다 볼 동네를 천천히 움직이신 것 같았다. 호텔에 짐을 풀고 청빙위원들과 저녁 식사를 했다. 나는 그 시간도 인터뷰 시간이라 생각하고 약간 긴장이 되기는 했는데, 청빙위원들은 하나같이 에임스 자랑만 했다. 에임스에 한인 식당은 없지만 참 좋은 곳이라고 평화로운 곳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엄청난 비가 쏟아졌다. 천둥 번개도 그렇게 크고 오랜 시간 계속되는 것은 처음 본 것 같았다. 그리고 주일 오전에 비가 멈추고 교회로 갔다. 교회는 참 예뻤다. 미국 교회 예배당을 빌려서 사용하고 있었는데, 미국 교회 예배당이 정말 좋았다. 크지 않았지만 알차게 세워진 교회였다. 예배 시간이 다 되었는데 담임목사님이 계시지 않았다. 청빙을 위해 온 목사가 설교 때 부담을 갖지 않게 하시려고 다른 미국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신다고 전해 들었다. 에임스에는 한인 교회가 딱 두 개밖에 없다.
설교 시간이 되었다. 나는 창세기 22장을 본문으로 설교했다. 그런데 설교를 하는 도중, 정확하게 말하면 본문을 읽을 때부터 교인 중에 눈물을 흘리는 분들이 있었다. 무슨 일인지 알 길은 없고 준비한 설교를 마쳤다. 그런데 예배를 인도하는 집사님이 광고하면서, 예배를 마치고 투표를 한다고 했다. 주보를 받지 못한 나는 옆에 앉아 계신 분에게 무슨 투표를 하느냐고 물었더니, 청빙 투표를 한다는 것이었다. 나를 청빙하는 것에 대해서 찬성을 묻는 투표라는 것이었다.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나도 아직 결정을 못 했는데 벌써 투표를 하느냐고 물었다. 그런데 이미 그렇게 계획이 되어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예배당 밖에서 투표 결과를 기다렸다. 40여 명이 예배를 드리고 있었기에 결과는 금세 나왔다. 한 표의 반대 외에는 모두 찬성이었다고 했다. 그리고 결과를 말씀해 주시는 분이 한 마디 덧붙이셨다. 공동의회를 할 때마다 한 표의 반대는 계속 나온다고 했다. 결과를 듣고 점심 식사를 마친 후에, 나는 비행기를 타기 전까지 네 가지 일정을 해야 했다. 하나는 대학생 청년들을 만나는 것이었고, 다음에는 대학원생 청년들을 만나야 했고, 그리고 담임목사님과 면담을 한 후에 마지막 청빙위원들과 만나는 것이었다. 청년들이 무척 밝았다. 미국 사람들도 관심이 없으면 잘 모르는 아이오와 에임스에 와서 살고 있지만, 견실한 교회에서 착실하게 신앙생활을 하는 청년들이었다.
담임목사님이신 김만성 목사님을 만났다. 목사님께서는 65세이셨는데, 8월에 정년 퇴임을 하시기로 계획을 하셨다고 했다. 에임스에 와서 23년 동안 목회를 하셨고, 목사가 되어서 처음 사역지가 에임스였다고 하셨다. 한국에서 ESF 사역을 하시면서, 이승장 목사님과 함께 청년 사역을 하셨고, 당시에 양육했던 분들이 김회권, 김호열 등 나도 익히 듣고 만났던 분들이었다. 너무나 귀한 분이 이렇게 외진 곳에 오셔서 묵묵히 청년들을 위해 목회를 오랫동안 해 오신 것이었다.
청빙위원들을 만났다. 나에게 청빙을 수락하겠냐고 물었다. 나는 주님의 표징이 급히 필요했다. 그래서 대답은 잠시 기다려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한 가지 질문을 했다. 왜 예배 시간에 교우 중 여러 분들이 눈물을 흘렸는지 물었다. 내 설교가 그렇게 감동적인 설교도 아닌 것 같은데, 그것도 설교 후반부도 아니고 본문을 읽을 때부터 눈물을 흘리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이렇게 대답하셨다. 담임목사님께서 5월에 은퇴 결정을 하시고 새로운 담임목사 청빙을 준비하라고 하셨는데, 교인 중에는 아무도 담임목사 청빙을 경험해 본 사람이 없었단다. 그래서 카운슬을 중심으로 각 가정마다 한 명씩 원하는 사람들로 청빙위원회가 구성되었는데, 준비를 시작하면서 붙잡았던 말씀이 창세기 22장이었다고 했다. “여호와 이레”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준비하실 것을 믿고 기도하며 청빙을 시작했는데, 자신들이 최종으로 결정해서 인터뷰하고 설교를 하러 온 목사가, 자신들이 준비하면서 붙잡았던 본문 말씀으로 설교를 시작하니,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라는 확신과 울림이 있어서 눈물이 나온 것 같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중에 나는 주님께 여쭈었다. “주님, 어떤 교회는 내가 담임목사가 되면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었지만 안 되었고, 어떤 교회는 너무 두렵고 자신도 없었는데 그 교회에서는 분명히 될 것이라고 해놓고 결과는 아니었고, 자신감도 두려움도 확신을 가질 수 없는 것이라면, 진짜로 내가 여기에 있어야 한다는 확신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습니까?” 그때 주님께서 이런 마음을 주셨다. “너 지금 마음이 평안하지 않니? 이곳 사람들과 인터뷰를 할 때부터, 여기에 와서 지금까지 불안했었니?” 그 마음을 가지고 돌아보았다. 한 번도 불안함을 느껴보지 못했다. 평안했다. 설교하는 순간도 긴장되지 않았고,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할 때도 편안했고, 청년들과 담임목사님, 그리고 지금 청빙위원들을 만나는 모든 순간에 마음에는 평안함이 가득했다. 그리고 마음속에서 찬송이 울리는 것을 경험했다.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나는 주님께 대답했다. “아, 이것이군요. 알겠습니다.”
나는 청빙위원들에게 “청빙을 수락합니다.” 말씀을 드렸다. 청빙위원들은 또 울었다. 공항으로 가서 아내에게 전화했다.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말한 후에, 아내가 “주님이 어떻게 확신을 주셨어?”라고 물었다. 나는 “평안함이 가득했어”라고 답했다.
(24편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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