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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터닝포인트(24) - 피 흘리는 새벽기도 본문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24) - 피 흘리는 새벽기도

Happy Jin 2020. 11. 26.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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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씁니다. 다시 매주 한 편씩 올릴게요. 기다려 주신 독자들께 감사드립니다. 잠시 중단했다 쓰는 글이니 옛날이야기를 잠시 하려 합니다.

 

나는 2002년에 미국 입국을 얼마 남기지 않고 만성부비동염(축농증) 수술을 했다. 환절기가 되면 자주 이비인후과를 가서 치료를 받게 되는 것이 불편해서 의사와 상의를 했다. 의사는 수술을 권했다. 나는 당연히 큰 병원에서 전신마취를 하고 수술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의사는 자기 병원보다 조금 더 좋은 시설을 가진 강남의 이비인후과를 소개했고, 그곳에서 부분 마취를 하고 수술하면 된다고 했다. 간단한 수술이니까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나를 안심시켰다. 하지만 부분 마취를 하고 수술이 시작되자 수술하는 소리가 머리를 울리며 귀에 들렸다. 생긴 것처럼 비위가 약한 나는 몇 차례 쇼크를 경험했다. 결국 양쪽 코를 모두 수술하지 못하고 한쪽만 수술을 마쳤다. 나는 내 코 안에 그렇게 많은 양의 거즈가 들어갈 수 있는지 처음 알았다. 지혈을 하고 뽑아내는 거즈가 정말 많이 나왔다. 하지만 신기해할 겨를이 없었다. 지혈이 충분히 잘 되지 않아서 피가 계속 새는 것 같았다. 나는 걱정이 되었는데 의사는 괜찮다고 했다. 어려서부터 코피를 자주 흘렸던 사람이라 나도 의사의 말을 믿고 걱정을 안 하려고 했다.

 

수술 후에 집에 와서 계속 이삿짐을 정리했다. 미국으로 가야 할 짐, 한국에 남겨 놓아야 할 짐, 팔아야 할 것 등을 정리하면서 해야 할 일이 많았다. 그런데 일을 하는 도중에도 계속 코에서는 피가 새는 것 같았다. 하루 종일 다음 날 새벽까지도 피가 새고 있어서 거의 잠을 이루지 못했다. 새벽에 첫 차를 타고 강남을 가서 병원을 갈 계획을 세웠다. 당시에 집이 경기도 기흥이었다. 

 

우리가 살던 아파트 단지는 새로 생긴 단지여서 초등학교를 비롯해 모든 것이 새로운 지역이었다. 하지만 크지 않은 동네였다. 그런데 아파트가 완공되고 입주가 시작될 때, 아파트 주위로 교회가 다섯 개나 개척이 되었다. 물론 규모가 작은 개척 교회들이라 아파트의 전 주민들을 다 소화할 수는 없었겠지만, 주민 모두가 교회에 다니는 것도 아닌데 저렇게 많은 교회가 생기면 교회 운영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되었다. 그런데 그중 한 교회는 건물이 입주 허가가 나지 않아서 아파트 입주가 완료된 후 한참이 지나서 교회 문을 열게 되었다. 이미 다른 네 곳의 교회는 사람들이 나가기 시작했고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춘 것처럼 보였는데, 어쩔 수 없이 뒤늦게 문을 연 그 교회를 보면서 늘 안타까웠다. 바로 아파트 입구 바로 앞에 있는 교회였기에 가장 좋은 위치를 잡았으면서도 가장 늦게 시작된 교회라는 것이 지나다니며 볼 때마다 안쓰러웠다. 

 

밤새 코피가 흐르는 것 때문에 잠을 잘 수 없었던 나는 새벽에 강남으로 가기 전에 새벽기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늘 지켜보기만 했던 그 교회의 새벽기도회에 가기로 했다. 예배당에 들어갔을 때, 목사님은 강단에서 엎드려 기도하고 계셨고, 예배당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 이런! 그냥 나갈까?” 하고 잠시 멈칫하는 사이에 목사님과 눈이 마주쳤다. 어쩔 수 없이 자리에 앉았다. 목사님은 나 한 사람을 앉혀놓고 새벽기도회 인도를 시작했다. 찬송을 부르고 성경을 읽고 설교를 하셨다. 그때 문제가 생겼다. 내 코에서 계속 피가 새어 나오는 것이었다. 새벽에 조금 진정이 되나 싶어서 교회까지 왔는데, 새벽기도가 진행될수록 피가 계속 나왔다. 가지고 있던 휴지를 다 써버려서 손수건을 꺼내어 막았다. 목사님은 내 코에서 피가 나는 것을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계속 설교를 하셨고 끝까지 새벽기도회를 마치셨다. 나는 중간에 밖으로 나갈까 몇 번을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나가면 목사님은 누굴 보고 설교를 하나?” 하는 생각 때문에 움직이지도 못하고 겨우겨우 코를 막고 있었다. 2~30분 정도 시간이 지난 것 같은데, 나는 20시간은 넘게 지난 것 같았다. 목사님은 인도를 마치신 후에야 나에게 다가오셨다. 그리고 괜찮냐고 물으시면서 강단 의자 옆에 있던 휴지를 가져다주셨다..

 

그 순간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아니 사람이 많은 것도 아니고 혼자 앉아 있는데, 피를 흘리고 있으면 설교를 하다가도 뭔가 도와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하고 생각했다가, “아, 사람이 앞에 앉아서 피를 흘리고 있으니 얼마나 무서웠을까? 그래서 눈 꼭 감고 설교를 하신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겨우 피를 조금 막고 목사님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면서 며칠 후에 미국으로 가는 목사라고 말씀을 드렸다. 또 나올 것을 기대하지 않으시도록.

 

이비인후과에 도착했다. “선생님, 밤새 피가 새어 나와서 한숨도 못 자고 왔네요. 괜찮을까요?” 라고 묻는 나에게 “새어 나온 피 다 모아봐야 한 컵도 안 될 거예요.”라고 웃으며 답하신다. 나는 밤새도록 코피를 흘리면서 “나를 위해 피를 흘리신 주님은 얼마나 큰 아픔을 겪으셨을까?” 생각하고 묵상하며 견뎠는데, 나는 고작 한 컵도 안 되는 피를 흘린 것이라 생각하니 밤새 가졌던 감동이 싹 사라졌다.

 

주일학교 때 여름 성경학교를 하면, 꼭 새벽기도회가 있었다. “Latte is horse!” 여름방학이 되면 성경학교(VBS)를 교회에서 했고, 새벽 6시,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교회에서 4일 정도의 시간을 보내며 성경을 배우고 찬송하고 놀면서 지냈다. 그때 처음 경험한 것이 새벽기도회다. 중고등부에 다닐 때는 방학이 시작되면, 몇 명의 학생들이 모여서 새벽기도회를 했다. 같이 말씀을 묵상하고, 묵상하면서 느꼈던 내용을 글로 써서 회지도 만들고는 했다. 나는 원래 어려서부터 새벽에 일어나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었다. 초등학교를 다닐 때, 부모님은 나를 저녁 9시가 되면 재우셨고, 새벽 4시 정도에 깨우셨다. 나는 늘 숙제를 비롯한 공부를 새벽에 했었다. 그렇게 새벽에 일어나는 것이 익숙했다. 그래서인지 새벽기도회가 크게 부담스럽지는 않다. LA에서 사역할 때는 교회가 새벽기도회에 열심을 내는 교회였다. 수백 명이 매일 새벽기도회에 나왔고, 토요일 새벽에는 거의 천 명 가까이 출석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집과 교회의 거리가 프리웨이로 20분 정도의 거리라 빠지지 않고 출석하는 것은 어려웠지만, 거의 매일 새벽기도회를 나갔다. 그렇게 지금까지 새벽을 새벽기도회와 함께 시작하는 것이 나의 일상이다. 뉴저지에서도 특별한 일이 없으면 늘 새벽을 열었다. 새벽에 교회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이 나는 참 좋았다. 지금도 그렇다. 하지만 새벽기도를 한다는 것이 늘 편안한 것은 아니다.

 

언젠가 에임스반석교회 카운슬 회의에서 목사님이 하루라도 쉬는 시간이 필요한 것 아니냐고 하면서 일주일에 하루라도 쉬라고 권했다. 보통 목사들은 월요일에 쉰다고 하고, 월요일 새벽기도회를 하지 않는 교회들도 많으니 그렇게 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했을 때, 사실 나는 월요일 새벽기도회를 정말 많이 사랑하고 좋아한다고 했다. 뉴저지에서도 부목사들이 돌아가면서 인도하는 평일 새벽기도회 중 나는 늘 월요일 새벽을 담당했다. 다른 목사들이 어려운 월요일 아침을 내가 담당하니 다른 사람들은 편안하게 생각하고 고마워하기도 했다. 나는 카운슬에게 내가 금요 찬양예배가 있는 날 에너지를 많이 소모하니, 토요일 새벽기도회를 안 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그래서 그때부터 지금까지 토요일은 새벽기도회를 하지 않는다. Light & Delight 말씀묵상도 토요일은 쉬고, 대신 토요일에는 목회서신을 써서 발송한다. 하지만 토요일에도 새벽에 일어난다. 정해진 시간이 없으니 조금 마음은 편하게 하고 일어나지만 그래도 평균 5시 전에는 일어난다.

 

목사와 교회가 새벽기도를 해야 한다 안 해도 된다 뭐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각자에게 맞는 묵상과 기도의 시간이 있을 테니 알아서 하면 될 것이다. 다만 목사이든 교인이든 믿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라면, 그리고 믿음이 조금이라도 성숙하길 원하는 사람이라면, 정해진 시간을 가지고 깊은 묵상과 기도를 하는 시간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시간이든 정해서 지키는 것은 고통이 따라온다. 때론 지치기도 한다. 그래서 쉼도 필요하다. 그렇게 쉼을 가진 후에는 다시 정해진 시간으로 돌아올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만 만족하는 대로 살아도 되는 사람들이 아니다. 누구라도 자신의 삶을 통해 누군가에게 작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것은 좋은 것일 수도 있고 나쁜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좋은 영향력을 발휘하며 살기 원한다면 피 흘리는 심정과 노력으로 자신을 가꾸어야 한다. 물론 혼자서 자신을 가꾸고 성숙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기도하는 중 나를 도우시는 주님의 은혜를 크게 입은 사람은 결코 혼자서 모든 것을 이루었다고 말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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