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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게 - 목회서신

분별력의 회복을 위해

Happy Jin 2020. 9. 12.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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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ght & Delight 8월 22일 목회서신

 

분별력의 회복을 위해

 

최근 한국의 소식을 접하면서 예수를 믿는 교인이라는 것이 이토록 부끄럽고 허망한 때가 있었나 생각게 됩니다. 교회가 세상에 덕을 끼치지는 못할망정 세상으로부터 지탄을 받는 상황이 된 것은 벌써 오래 전 일입니다. 그러나 이토록 혐오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에 속이 쓰리도록 아픕니다. 그것은 미친 사람처럼 날뛰며 스스로 목사라고 하는 한 사람 또 그를 따르는 무리가 큰 책임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원인, 더 마음을 무겁게 하는 것은, 그들과 한 자리에 있는 교회들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의 대표적인 대형교회들이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서는 눈을 감았습니다. 오히려 예배를 제한하는 행정 명령 등에 대해서만 비판합니다. 자신들이 지금까지 가져온 태도가 일을 이렇게 만들었다는 것에 대해서는 전혀 성찰이 없습니다.

 

이 모든 일은 교회가 기득권을 지키려는 일에서 생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정 이 시대의 교회가 그리스도와 성경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있을까요? 그렇다면 왜 이웃을 생각하고 섬기는 일에는, 어려운 때에 조금 더 인내와 절제의 삶을 살아가는 것, 사회의 소외된 계층에게 관심과 사랑을 베푸는 일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을까요? 교회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고,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곳이라면 무엇을 해야 할까요? 성경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싸우라고 했나요? 논리에도 맞지 않는 왜곡된 것으로 사회를 비판하라 했나요? 예수님은 자신의 권세를 유지하게 위해 애를 쓰셨나요? 아닙니다. 전혀 반대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교회들이 보여 주는 모습과 전혀 반대로 사셨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늘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죄인이라 취급받으며 소외 당하던 사람들을 가까이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사람이 가진 경험에서 오는 힘을 의지하려는 마음을 버리고, 겸손하게 하나님을 의지할 것을 가르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특별히 한국의 보수 교회들이라 일컫는 대형교회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는 것 같아 보입니다. 비난해야 할 것은 비난하지 않고(사실 지식이 없으니 비난할 수도 없고), 지켜야 할 것은 버리고(어떻게 지켜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엉뚱한 것을 붙잡고 늘어지는 경우가 너무 많이 보입니다. 

 

이 모든 것의 원인이 분별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분별력의 근원인 지혜가 없기 때문입니다. 지혜를 주시는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졌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졌다는 것은 우리가 최근 묵상하고 있는 ‘이사야서’의 말씀만 보아도 쉽게 느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한결같이 공평과 의의 하나님이심을 말씀하십니다. 절기를 지키고 제사를 행하는 일보다,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며 정의와 긍휼로 살 것을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들이 행하는 종교적 행위 자체만 생각합니다. 사회에 필요한 정의와 긍휼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통치자들도 종교지도자들도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은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은 말씀을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말합니다. 참된 선지자를 통한 가르침은 경청하지 않고 빈정거립니다. 힘이 있다고 교만하고, 그 힘으로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사람의 생각만 앞세웁니다.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지도 않습니다. 

 

교회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졌다는 증거는 바로 공평과 정의의 실현을 교회에게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에서 볼 수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뚜렷한 죄악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오로지 자기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일에는 총력을 다하는 것은 교회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가까이 하실 이유가 없습니다.

 

분별력의 회복을 위해 우리는 하늘의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다른 어떤 것보다 하나님을 알아가는 일에 마음을 쏟아야 합니다. 월터 브루그만은 그의 책 “다시 춤출 때까지”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세계 안에 살아가는 삶은 하나님은 인간이 헤아릴 수 없는 분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도록 요구한다. 하나님은 어떤 한계도 거부하시며, 자신을 길들이려는 인간의 모든 노력을 허사로 만드신다.”

 

교회와 사람들의 오만함은 하나님을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는 존재로 한계를 지으려는 시도를 합니다. 화려한 성전을 만들고 하나님은 오직 그 안에 머물고 계셔야 한다는 이상한 신학과 정의(definition)를 만듭니다. 자신들이 계획한 일을 반드시 형통하게 하셔야 하나님이실 수 있다는 왜곡된 신앙을 만듭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모든 왜곡을 무너뜨리십니다. 인간의 그러한 노력은 허사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일어나 일하는 땅에는 약하다고 소외 당했던 사람이 복을 얻습니다. 세상의 힘에 기대지 않고 하나님 앞에 정직하고 의롭게 사는 사람, 인간의 꼼수를 버리고 정당한 길을 걸어가는 사람에게 평안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모든 한계를 초월하시는 분이십니다. 이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우리에게 이렇게 생소한 시대를 만나게 하셨을까요? 전염병으로 온 세계가 긴장하게 되는 일이 왜 일어났을까요? 그 이유와 원인은 알 길이 없습니다. 다만 이러한 때에 우리가 깨달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은 약한 존재라는 것, 그리고 나보다 더 약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조금이라도 힘이 있다면 옆에 있는 이웃을 돌보아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는 먼저 그 사실을 깨닫고 증거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우리가 한없이 나약한 존재이기에 하나님의 구원을 믿고 소망할 수밖에 없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셨다면 우리보다 약한 사람들을 위해 섬기고 헌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자신들만 지키려고 한다면 교회는 그 존재의 이유를 잃게 됩니다. 

 

이번 미국 대통령 선거에 민주당 부통령 후보로 나온 Kamala Harris가 부통령 후보 수락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This virus it has no eyes and yet it knows exactly how we see each other. And how we treat each other and let’s be clear there is no vaccine for racism. We’ve got to do the work for George Floyd for Brianna Taylor for the lives of too many others to name for our children and for all of us. We’ve got to do the work to fulfill that promise of equal justice under law, because here’s the thing none of us are free until all of us are free.”

 

이 시대에 우리가 깨달아야 하는 것은 바로 약하고 소외 당한 사람들에게 참된 평등과 자유와 정의가 실현될 수 있게 하기 위해 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교회가 앞장서서 해야 할 일이라고 믿습니다. 우리 함께 간절히 기도합시다. 교회가 하나님을 바로 알고, 지혜를 얻고, 분별력을 회복하게 하여 주시기를 간구합시다. 교회의 권위는 스스로 소리치는 것에서 세워지는 것이 아니고, 사람들을 위해 온전한 헌신으로 섬길 때 세워지는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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