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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ppy Holiness
우리 가족은 2002년 12월 29일 주일예배를 동양선교교회에서 드렸다. 예배를 마치고 나가는 길에 강준민 목사님께, 한국에서 풀러에 유학 온 목사라고 인사를 드렸다. 강 목사님께서는 특유의 눈빛으로 우리 가족들을 보시고, 한 번 연락해서 만나자고 하셨다. 같은 주 금요일인 2003년 1월 3일에 동양선교교회에서는 “말씀묵상 세미나”가 열렸다. 강 목사님께서는 새해를 맞이하면 금요일마다 몇 주간에 걸쳐서 말씀묵상 세미나를 여셨다. 나는 이미 한국에서도 강 목사님의 책들을 접했었다. 그리고 말씀묵상에 대한 관심도 컸기에 세미나에 참석했다. 세미나가 금요일 저녁에 열렸는데도 1,000여 명이 참여한 것으로 보였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예배를 마치고 나갈 때 목사님께 인사를 드리면서 나가기는 불편해서 옆문으..
우리 가족은 미국행을 결정했다. 나는 Fuller 신학교에서 목회학 박사과정을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2002년 12월 10일 영하 12도의 날씨에 한국을 떠났다. LAX에 도착했을 때, 날씨는 무척 따뜻했다. 한국 같으면 늦은 봄 날씨로 느껴졌다. 보성교회 고등부 교사를 할 때 가르쳤던 정인석이 먼저 USC 유학을 와 있었다. 그리고 어렸을 때 한 동네 살았던 동생 친구의 동생인 김수진도 LA에서 치과의사로 있었다. 두 사람이 우리가 LA로 온다는 소식을 듣고 데리러 나왔다. 한인타운 근처에 있었던 인석이의 집에 짐을 내려놓았다. 처음 밟은 미국 땅이었는데 불안하지 않게 미국 생활을 시작했다. 잠시 낮잠을 자고 저녁에 일어나서 밥을 먹으러 갔는데, 우리 가족은 아직 한국에 있는 줄 알았다. 미..
나는 1995년 초까지 보성교회를 출석했다. 내가 4살 때부터 다녔으니까, 거의 23-4년을 다닌 셈이다. 1994년에 고 이범구 목사님께서 은퇴를 결정하셨고, 새로운 담임목사가 보성교회에 부임했다. 장로님이셨던 아버지께 청빙 하게 된 결정적 이유를 여쭈었더니, 그분이 담임으로 사역하던 교회에서 타던 승용차가 ‘프라이드’(당시 기아에서 나온 소형차)라고 하시면서, 검소한 분이라고 하셨다. 나는 아직도 그것이 왜 담임목사 청빙의 결정적 이유가 되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새로운 담임목사님의 설교와 목회는 아내와 나를 힘들게 했다. 더구나 신학교에 진학하고 목사가 되려고 준비하는 나는 주일마다 어려움을 겪었다. 나는 기어이 아버지께 “나는 총신신대원 안 가고 다른 신학교에 가도 좋으니 교회를 떠나야겠다”라고 ..
SOUL(Servant of Ubiquitous Lord, 그리스도의 머슴들)에 대한 두 번째 이야기. 앞에서도 SOUL에 대한 이야기가 글로 표현하는 것에 한계와 부담을 느낀다고 했는데, 두 번째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나는 SOUL 모임의 지체들이 합의한 가치와 비전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겪었던 일들과 그 안에서 주님의 일하심을 정리해서 나누고자 한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다. 나는 86년 여름부터 94년 겨울까지 전도여행에 참여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방위 복무 중이던 88년 여름과 89년 겨울, 그리고 앞에서 이야기했던 캐나다에 갔던 91년 여름, 세 번은 참석할 수 없었다. 확실하게 몇 년 도인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1990년이 아닐까 싶..
SOUL(Servant of Ubiquitous Lord, 그리스도의 머슴들)에 대한 이야기는 내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글로 표현하는 것에 한계와 부담을 느낀다. 왜냐하면 함께 했던 형제자매들이 많았고, 지금도 끊임없이 같은 열정으로 주님을 섬기기 위해 진화하며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86년에 대학 입학을 앞둔 나는, 고등학교 때 합창반과 중창단에서 함께 하던 선배들이 남해안 소록도에 다녀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86년 2월에 있었던 여행에는 무슨 이유인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나는 함께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여행에 같이 갔던 선배들이, 같은 해에 개교한 과학기술대학교(KAIST)에 전도집회를 가자고 했고, 5월에, 과학기술대학교 강당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찬양 전도집회를 했고..
1988년 2월에 입대를 했다. 수색이었나? 그 근처 56사단에 입소를 했다. 18개월 단기사병(방위)으로. 4주 훈련을 받고 집 근처에 있는 한미연합군사령부에 배치를 받았다. 용산 미군 부대 안에 있어서 그 안에는 모두 카투사만 있는 줄 아는 분들이 있는데, 그 안에도 한국 군인 현역 60명과 방위 30명이 있었다. 현역들은 참모 사무실 등에서 통역을 하는 영어 잘하는 병사들이었다. 카투사 시험 결과 1등과 2등은 카투사로 안 보내고 연합사로 보낸다는 소문이 있었다. 방위 30명은 그냥 동네 사는 청년들이었다. 아마 연합사 내의 잡일을 위해 소집 되었다고 하면 적당한 것 같다. 나는 신체검사 때 시력이 좋지 않아서 4급을 받아 방위가 되었고 집에서 출퇴근을 하게 되었다. 다른 방위들 보다 좋았던 것은 ..
1991년 여름, 나는 캐나다 에드먼턴에서 두 달이라는 시간을 보냈다. 당시 해외여행이 자유화된지 얼마 지나지 않았던 때였고, 외삼촌과 아버지의 강력한 권유(사실은 거의 강제)로, 동생과 외사촌 동생들과 에드먼턴 University of Alberta에서 어학연수를 하게 되었다. 사실 나는 여름을 그렇게 한가하게 보낼 사람이 아니었다. 여름에는 할 일이 정말 많았기 때문이다. 대학부 수련회, 전도여행, 교회 중고등부 수련회, 유년부, 초등부 성경학교만 해도 방학의 절반 이상은 계속 바쁘게 지내야 했다. 그리고 그 일들을 준비하는 시간까지 합하면 10주 정도의 방학 중 8주 이상의 시간을 그 일들을 하며 보내는 것이 내 방학의 일정이었다. 그 모든 일은 어느 정도 보조를 맞추는 수준이 아니라, 주도적으로 ..
목사가 되려는 나의 마음은 중학교 3학년 때부터 변함없이 이어졌다. 다른 직업들에 대한 생각들은 점점 멀어졌다. 얼마 전에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보면서 의사를 안 하기로 한 것(?)은 너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의사보다 목사가 쉽다는 것은 아니다. 고등학생 때 다니던 교회의 담임목사님과 만나는 시간이 있었다. 목사님께서는 목사가 되기로 생각했다니 신학교를 가겠지만, 곧장 신학대학으로 가지 말고, 일반대학을 가라고 하셨다. 일반대학에 가서 세상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사는지 보고 배우라고, 그리고 신학교 가면 전도할 기회도 별로 없으니, 일반대학에 가서 전도도 하면서 지내라고 하셨다. 나도 목사님의 말씀에 충분히 동의했다. 고등학교 1학년이 마치고 2학년에 올라갈 때, 이과로 방향을 잡았다. ..
중학교 3학년 때였다. 여름에 교회 수련회가 있었는데, 그 해에는 밖으로 나가지 않고 교회에서 수련회를 했다. 중학교 때부터 대학 졸업할 때까지 수련회를 여름과 겨울로 모두 참석했는데, 그 중에서도 나에게는 가장 재미 없었던 수련회로 기억한다. 무슨 말씀을 들었는지도 모르겠고, 그저 나는 중등부 회장으로서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것 같다. 수련회 마지막 날 마지막 시간에, 수련회를 마친 소감 또는 간증을 발표하는 시간이 있었다. 발표 순서가 정해졌고 회장이던 나는 제일 마지막에 발표하게 되었다. 그런데 내 동기 남자 친구들이 간증을 하면서, 수련회를 통해 은혜를 많이 받았다고, 목사가 되기로, 선교사가 되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수련회를 마치고 목사나 선교사가 되겠다고 하면, 그 친구가 수련..
터닝포인트(Turning Point) 그리고 곡선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라는 제목으로 글을 쓰려고 합니다. 제가 살아온 시간을 돌아보면서, 중요한 순간마다 저의 길을 움직이셨던 주님의 섭리와 만남을 생각하고 기록하고자 합니다. 글을 쓰다가 생각하게 된 것이 있습니다. 보통 터닝포인트라고 하면 진행하던 방향에서 갑자기 90도 이상 꺾어지는 정도, 또는 완전히 180도 방향을 바꾸는 지점이라고 생각하는데, 제 인생의 길을 보니 그렇게 급변했던 경우는 잘 보이지 않고, 아주 조금씩 방향이 조정되는 것을 경험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생각하게 된 것이, 인생이란 선은 꼭짓점이 있는 직선의 조합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계속 이어지는 곡선이란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사람들은 왜 수많은 곡선은 제쳐두고, 직선만 생각하..